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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론 묘 이장’ 아르헨 들썩

입력 | 2006-09-18 02:56:00


‘고이 잠드소서’라는 말은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 전 대통령 및 그의 두 번째 아내인 에바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이들의 시신은 손상되거나 강제 이장당하는 험난한 여정을 걸어왔다.

페론 전 대통령의 시신이 사망 32년 만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의 산빈센테 묘지로 향한다고 워싱턴포스트가 16일 보도했다. 이 지역은 페론 전 대통령의 출생지다.

왜 뒤늦게 페론 전 대통령 이장 문제가 아르헨티나 정가의 이슈로 등장했을까.

페론 전 대통령은 오늘날에도 아르헨티나 민중주의 세력의 상징이다. 페론주의를 표방하는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대통령은 이장 행사를 통해 정치적 주도권을 다지려 하고 있다. 죽은 자에게 영예를 안겨 주는 아르헨티나의 오랜 풍습과 ‘페론 자신이 고향에 묻히기를 원했다’는 점도 이장 결정에 힘을 실어 줬다.

1974년 사망한 페론 전 대통령의 시신은 1980년대에 도굴꾼에 의해 훼손되기도 했다. 에비타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에바의 시신은 더 험한 꼴을 당했다. 페론 전 대통령은 1952년 사망한 에바의 사당을 만들려고 했지만 1955년 쿠데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페론주의자의 반발을 우려한 군부 세력은 1957년 비밀리에 에바의 시신을 이탈리아로 보냈고 묘비에도 가짜 이름을붙였다. 시신은 17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또 쿠데타가 발생했다. 결국 페론 전 대통령은 차카리타에, 에바는 레콜레타 묘지에 따로 묻혔다.

밑바닥 생활을 경험한 만큼 노동자를 잘 이해했던 에바는 페론 전 대통령이 도시노동자를 위해 추진한 민중 민족주의 정치노선 ‘페론주의’의 화신으로 추앙받는다. 출신과 빈부에 따라 차별을 받는 아르헨티나 실상을 감안하면 빈민층과 에비타의 유대감은 당연지사인 셈이다.

페론 전 대통령의 이장 뒤에는 에바와의 합장 여부가 논란이 될 전망이다. 에바의 자매들이 반대하고 있지만 빈민 계층은 자신들의 대표자였던 이들이 합장되길 바라고 있다. 쿠데타와 혼란으로 점철됐던 아르헨티나의 복잡한 역사가 페론 전 대통령의 이장을 계기로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가게 될지 주목된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