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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들여다보기 20선]남자, 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

입력 | 2006-09-19 02:59:00


《결코 남자가 악의나 고의로 문명을 파괴해 황폐하게 만든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은 문명 속에서는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했을 뿐이다. 그런 남자를 비난하는 것은 마치 아메리카 들소에게 왜 골동품 상점을 고향처럼 편안히 여기지 않느냐고 나무라는 것과 똑같다. 들소에게는 곳곳에 웅덩이·습지·진흙탕이 있는 넓은 초원이 필요하다. 남자에게는 취미생활을 할 수 있는 지하실, 차고, 운동장 그리고 술집이 필요하다. -본문 중에서》

알고 지내던 방송인이 결혼할 때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남자’를 선물했다. 눈치 빠른 이들은 그 방송인이 여성이었음을 금세 알아차렸을 터다. 결혼하는 남자에게 책을 선물하는 경우는 없다. 아마도 책을 선물로 받았다면 무척 기분 나빠했으리라. 왜냐고 묻지 말기를. 본디 남자라는 족속이 다 그러니까 말이다. 한창 깨가 쏟아질 무렵 그 방송인을 만났는데, 대뜸 하는 소리가 결혼선물로 받은 책이 큰 도움이 되었단다. 비록 적령기를 한참 넘어 맺어진 사이지만 누구나 결혼과 사랑에 대한 낭만적 환상과 기대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성에 차지 않을 때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이해하도록 이끌어 준 것이 바로 이 책이었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슈바니츠가 역시 역량 있는 저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의 박학다식과 책을 많이 읽고 기억을 잘하는 박람강기, 그리고 날렵하며 풍자적인 문체는 ‘교양’에서 입증된 바 있다. 그것도 베개로 쓰기 맞춤한 분량을 소화해 냈으니 기동력뿐만 아니라 지구력도 갖춘 글쟁이다. 하지만 여성이 남자가 쓴 남자에 관한 책을 읽고 남자를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스스로 비유를 들었지만 남자와 여자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개와 고양이 같은 법이다. 그런데 그는 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저주의 장벽을 넘어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책의 구성부터 독특하다. 세 가지 색 조각보를 짜 맞춰 화려한 보자기를 만들어 내는 격이다. 먼저 8편의 ‘남자론’이 바탕색으로 깔린다. 경탄할 만한 입담으로 남자를 까발려대니 고개를 주억거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남자의 나라에 자리 잡은 ‘대도시 테스토스테론에 대해, 그리고 그 나라의 풍부한 천연자원, 특히 그 나라의 산업과 부강함의 기초를 이루는 귀중한 Y염색체에 대해서 서술’한 것이다. 지루할까봐 그랬는지 아니면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랬는지 중간에 슬쩍 12명의 ‘남성초상화’를 집어넣었다. 앞서 설명한 내용에 걸맞은 전형적인 인물을 통해 반복적으로 자신의 이론을 설명한다. 마지막 조각보는 ‘여성들의 희극’. 본문 내용을 여성의 관점에서 변형해 읽는 맛을 더한다.

아는 것도 많고 말도 많은 사람이 쓴 책이라 핵심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지만 결국 남성과 여성과의 다름이 어디에서 비롯하고 있는지를 톺아보고 있다. 그 가운데 핵심은 ‘모든 남성 유전자는 성공적인 남자의 몸속에만 살아왔다’는 구절에 있다. 투쟁과 경쟁에서 살아남아 세운 것이 바로 남자의 나라라는 것이다. “여자들이여! 이 점을 이해한다면 남자들의 그 터무니없는 짓들을 두루 용서할 수 있으리라”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덧붙이는 한마디. ‘남자’를 선물하면서 내털리 앤지어의 ‘여자’도 함께 넣어두었다. 그녀의 남자가 읽어보길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끝내 ‘여자’는 읽혀지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내가 보기에 이래서 남자의 나라가 몰락하고 있는 듯싶다.

이권우 도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