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총리 선출이 끝났나? 차기 총리 선출을 불과 며칠 앞둔 일본 도쿄의 신문 기사 제목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차기 총리가 누구를 후임 관방장관에 임명하나’ ‘아베가 총리 취임 후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할 것인가’ 등이다. 20일 자민당 내 총재 선출, 26일 임시국회에서 총리 지명 등의 선출 절차가 남아 있지만 언론이나 일반 국민이나 일본 열도에선 이미 ‘아베 총리’ 시대가 시작됐다. 전후 역대 어느 선거에서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다. 그래서 ‘아베 총리’ 시대는 전후 어느 때와도 다른 일본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렇다면 아베 정권은 어떤 색깔을 띨까? 아베의 일본은 ‘강대국 일본’을 성취하는 정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세계의 경제 대국으로 올라선 후 줄기차게 거론되어 온 정치 대국, 군사 대국이라는 국가 목표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가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강행하며 자락을 깔았다면 아베는 이를 마무리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
군사 대국의 염원에 족쇄가 돼 온 헌법 제9조의 개정도 임기 내에 추진할 것으로 판단된다. 아베는 동맹국 미국이 공격을 받으면 함께 싸우는 집단적 자위권 문제도 매듭지어 ‘강대국 일본’을 겨냥한 거침없는 행보를 내디딜 전망이다.
전후 세대인 아베는 북한 미사일 발사에 대해 선제공격까지 주장하고,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 소형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마저 내비친다. 그래서 패전의 열등감에 짓눌린 일본을 새로이 세우려는 그의 정치 목표는 전후 세대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아베가 눈치를 보는 것은 오직 야스쿠니신사 참배다. 한국과 중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일본과의 정상 간 만남마저 중지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당연하게 여겨 온 아베가 노코멘트로 일관하는 이유는 한중 양국과의 외교가 신사참배 문제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교착 상태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다 중국을 더 의식하는 아베는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요구하는 일본 내 경제단체의 목소리를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상태다. 일본 경제계가 중국과의 불화로 속이 타는 이유는 중국의 고속철도 건설과 원자력발전소 건설이라는 두 가지 큰 국가사업 때문이다.
2004년 가와사키중공업은 베이징∼상하이 간 고속철도 차량 480량을 1조4000억 원에 계약했다. 앞으로도 고속철도 관련 수요가 많다. 중국의 원자력발전소 건설시장 규모도 8조 원대다.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는 중국은 2020년까지 100만 kW급 원자력발전소 30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일본 도시바는 중국시장을 겨냥해 미국의 원전 건설사인 웨스팅하우스를 50억 달러에 사들였다.
이런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일본 경제계로서는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더 지체할 수 없는 상태다. 아베도 이런 사정을 알기 때문에 야스쿠니 문제를 어물쩍 넘기거나 덮어둘 수밖에 없지만 국민과의 약속도 나 몰라라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아베 정권의 탄생은 본격적인 중-일 경쟁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급부상하는 중국과 경쟁하며 경제에 이어 군사 정치 강대국을 꿈꾸는 총리 선출을 앞둔 일본의 한복판에서 한국의 앞길을 생각해 보게 된다. 한국은 ‘준강대국’이 아니라 ‘평화 지향적인 강대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인 국가 전략을 갖지 않고는 역사의 격랑을 피해 나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곧 다가올 일본의 ‘아베 총리 시대’를 현장에서 보면서 국력을 충실히 키우는 것만이 나라를 온존하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김경민 한양대 교수·국제정치학 도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