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월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러시아 로망스를 녹음했던 피아니스트 니나 코간(오른쪽)과 첼리스트 박경숙 씨. 영하 40도의 쌀쌀한 날씨 속에서 3일간의 작업 끝에 녹음된 이 음반은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 제공 굿인터내셔널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사랑은 내 영혼 속에서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 사랑 더는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어떻게든 당신을 슬프게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드르 푸시킨은 젊은 시절 안나 올레니나라는 여인에게 자신의 생을 걸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예술원 원장이었던 올레니나의 아버지는 몇 차례 유배를 당했던 푸시킨과의 결혼을 완강히 반대했다. 그녀가 떠난 다음 푸시킨은 가슴이 저밀 만큼 처연한 사랑의 시 한 편을 바쳤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라는 이 연가는 작곡가 셰레메체프가 곡을 붙여 러시아인이 가장 사랑하는 로망스로 남았다.》
2003년 1월 유서 깊은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국 제7스튜디오. 피아니스트 니나 코간(모스크바 음악원 교수)과 한국인 첼리스트 박경숙(계명대 음대 교수) 씨는 사흘에 걸쳐 녹음했다. 니나 코간이 직접 편곡한 이 로망스는 노래 대신 첼로와 피아노 2중주가 연주하는 음반(굿인터내셔널)이었다.
니나 코간은 러시아의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트 코간의 딸이자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의 조카. 파리 마르게리트 롱 국제 피아노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했던 그녀는 13세부터 아버지와 함께 연주했다. 그녀는 이후 16년 동안 아버지의 유일한 반주자이자 음악의 동반자였다.
“아버지와 함께 연주하는 건 힘든 일이었지만 내 음악인생에 있어 최고의 기억이었어요. 다른 연주와는 비교가 될 수 없지요. 12세부터 서방을 돌며 많은 연주를 했지만 우선순위는 항상 아버지와의 콘서트였습니다.”
그녀는 다음 달 12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에서 첫 내한공연을 한다. 박 씨와 ‘나 홀로 길을 가네’ ‘나는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등 로망스와 라흐마니노프, 슈트라우스의 첼로소나타를 연주할 예정이다.
그녀는 본보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박 씨와 작업을 했을 때 러시아 로망스가 품고 있는 정서와 스타일을 굉장히 빨리 이해해 놀라웠다”며 “러시아 로망스는 한국인의 정서와 감성에도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시 박 씨는 일부러 호텔이 아닌 민박을 하면서 러시아의 체취를 느끼며 연주를 준비했다고 한다.
“영하 40도의 날씨였어요. 러시아어는 하나도 할 줄 몰랐지만 첼로를 등에 매고 모스크바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녔지요. 혹독한 추위 속에서 푸시킨의 시를 계속 외우고 다녔습니다. 3주 동안 연습을 하니까 러시아 여자가 된 듯했어요. 지금도 로망스를 연주하면 낮게 내리깔린 모스크바의 하늘이 생각납니다.” 3만 원. 02-3436-5222
한편 니나 코간은 다음 달 10일 오후 8시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수원시립교향악단(지휘 박은성)과 함께 쇼스타코비치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협연할 예정이다. 1만∼3만 원. 031-783-8022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