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에 버드나무 한 그루
제 마음에 붓을 드리우고 있는지
휘어 늘어진 제 몸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휙휙 낙서를 써 갈기고 있다
어찌 보면 온통 머리를 풀어헤치고
헹굼필법의 머리카락 붓 같다
발 담그고 머리 감는 갠지스 강의
순례객 같기도 하고.
낙서로도 몇 마리의 물고기를
허탕치게 하는 재주도 부럽고
낙서하기 위해
몇십 년을 허공으로 오른 다음에야 그 줄기를
늘어뜨릴 줄 아는 것도 사실 부럽다
쓰자마자 지워지는
저만 아는 낙서 경전(經典)
지우고 또 지우는 마음이
점점 더 깊어지며 흐를 뿐이지만
물 묻은 제 마음이 물 묻은 제 문장을 읽는
제가 저를 속이는 독경(獨經)
지구의 모든 문장이 저와 같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참 대책 없다.
-시집 ‘낡은 침대의 배후가 되어가는 사내’
(랜덤하우스) 중에서》
무릇 모든 굴광성의 식물은 새 가지부터 태양을 향하지만, 유독 버드나무 새순이 제 발밑 그늘을 스치는 까닭은 무엇인가. 굽은 버드나무 가지가 허리를 펴는 때는 언제인가. 낙서도 평생을 저리 경건하게 하는 것이라면 ‘낙서’와 ‘경전’의 차이는 무엇인가. 저를 속이는 것이 ‘물 묻은 제 마음이 물 묻은 제 문장을 읽는’ 것이라면, 저 독경은 얼마나 슬프고도 따뜻한 것인가. ‘지구의 모든 문장이 저와 같’으니 세상은 천 년 붓질에도 파지 한 장 없는 것 아닌가.
-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