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살랑살랑 자전거를 타고 온다. 자전거 두 바퀴는 ‘건강’과 ‘기쁨’의 동그라미. 바퀴가 굴러가면 행복이 저절로 샘솟는다. 자전거를 타면 누구나 새가 된다. 바람이 된다. 그저 바퀴 닿는 대로 마음 따라 떠나면 된다. 길이 끝나면 산이 이어지고, 산이 다하면 길은 또다시 시작된다. 숫가을. 경기 구리시 토평동 한강시민공원. 코스모스 보살님들이 까르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좀이 쑤셔 미칠 것 같아 산악자전거(MTB)를 한 손으로 질질 끌고 나온 ‘원맨쇼의 황제’ 백남봉 씨. 백 씨는 얼마 전 자전거를 타다 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어깨 빗장뼈가 부러져 열흘간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 구리=김동주 기자
백남봉 씨의 MTB 핸들 부분. ㄱ자 손잡이(바엔드)와 라이트, 속도계가 눈길을 끈다. 김동주 기자
《어찌하여/아름다운 것들은 둥근 것일까//논에서 자라는 곡식들/밭에서 자라는 보리 밀/콩 녹두 수수알갱이여/……/논길 밭길 걸어서/떠나는 사람들의 둥근 뒷모습/가을엔 단풍숲 헤쳐 길 찾아가는/사람들의 둥근 이마와 둥근 앞모습(김준태 ‘아름다운 것들은 왜 둥글까’ 부분)
자전거는 둥글다. 두 개의 동그라미가 한 개의 동그라미를 업고 굴러간다. 자전거를 타면 누구나 동그라미가 된다. 뻣뻣한 노인의 허리는 부드럽게 휜다. 푹 꺼진 엉덩이의 굴곡은 풍선처럼 둥글게 부풀어 오른다. 울혈과 분노로 가득 찬 마음도 스르르 풀려 둥글어진다.》
코미디언 백남봉(67) 씨는 요즘 속이 자글자글 끓는다. 눈을 감으면 자꾸만 ‘길’이 어른거린다. 시골 길, 자갈길, 아스팔트 길, 코스모스 길…. 그는 산악자전거(마운트 바이크) 라이더다. 1996년부터 탔으니 올해로 10년째. 하지만 당분간 자전거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다.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분당∼탄천 코스를 달리다가 영동대교 아래에서 그만 사고를 당한 것. 앞서 가려던 동료와 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어깨 빗장뼈가 5조각으로 부러졌다. 철심을 박고 10일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뼈가 붙으려면 앞으로 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이번이 3번째 부상입니다. 1999년엔 경기 양평군 용문산에서 젊은 친구들을 뒤쫓아 내려가다가 바위에 걸려 3m나 공중으로 튀어 올랐습니다. 갈비뼈 3대가 부러져 한 달 동안 꼼짝도 못했어요.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다시 자전거를 탔습니다. 어휴, 못살아요, 내가…. ㅋㅋㅎㅎ.”
○ 우린 바람이 불면 페달을 밟고 내달린다
백 씨는 원래 축구 마니아. ‘백 펠레’로 불리며 20여 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하지만 몸무게가 80kg(키 167cm)을 웃돌면서 무릎이 아팠다. 걸을 때마다 달그락 소리가 나더니 어느 날 심한 당뇨까지 왔다. 그때 가수 김세환(59) 씨가 산악자전거를 권했다. 김 씨는 산악자전거 21년 경력의 지존. 그에게서 오르내릴 때 기어 변속 등 기본을 배웠다. 타면 탈수록 다리에 힘이 붙었다. 살이 슬슬 빠지더니(70kg) 혈당 수치가 확 내려갔다. 무릎도 씻은 듯이 나았다.
자전거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기 힘들다. 소설가 김훈(58), 가수이자 탤런트이며 배우인 김창완(52), 정신과 전문의 김병후(51), 탤런트 송일국(36), 국회의원 박찬석(66) 김충환(52) 정두언(49) 씨 등 ‘중독자’가 수두룩하다. 직장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마니아도 눈에 띄게 늘었다.
“산악자전거라고 해서 꼭 산으로만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힘과 경력에 맞춰 마음 편하게 타면 되지요. 초보자는 한강시민공원이나 지천인 양재천 불광천 등의 자전거도로를, 중급자는 남한산성 남산 우면산 대모산 코스, 상급자는 용문산, 운두령, 미시령 등 험한 코스를 타면 됩니다. 난 미사리∼행주산성, 분당∼탄천, 남한산성, 경기 포천시 국립수목원 등을 즐겨 달립니다. 가끔 제주도에 갈 일이 있으면 자전거를 분해해 비행기에 싣고 가서 제주 일주도로를 달리지요. 황홀합니다.”
자전거는 사람 몸의 지방을 태워서 달린다. 전신운동에 에너지 소비가 엄청나다.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짱’이 된다. 병원에서 판정한 백 씨의 몸 나이는 45세 안팎. 군살이 거의 없고 허벅지가 빵빵하다. 백 씨는 “결코 ‘49세 나이’ 하고 바꾸고 싶지 않다”며 껄껄 웃는다.
백 씨의 산악자전거는 수제품인 ‘세븐(SEVEN)’. 미국에서 백 씨의 몸에 맞게 안장 높이와 팔 길이 등을 딱 맞춰 왔다. 몸체만 750만 원 정도. 소재는 비행기 만들 때 쓰는 티타늄이다. 27단 기어. 바퀴 등 전체 무게는 10.8kg. 한 손으로 쉽게 들어올릴 수 있을 정도로 가볍다. 어디에 부딪혀도 부러지지 않는다. 휘어졌다가 금세 원상태로 돌아온다. 넘어져도 라이더가 크게 다치지 않는 이유다. 속도계도 있다. 최고 최저 속도에서부터 현재 속도, 평균 거리까지 표시된다. 백 씨는 시속 52km까지 달려 봤다. 이 속도는 자동차가 시속 230km로 달릴 때 받는 느낌과 같다.
○ 휴일 한강 자전거도로는 ‘난리 블루스’다
휴일 한강 자전거도로는 북새통이다. 보행자, 마라토너,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가 한데 뒤엉켜 사고가 잦다. ‘자전거는 우측, 보행자는 좌측통행’이라는 표시가 있지만 있으나마나다. 인라인스케이트는 아예 언급조차 없다.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가 정면충돌하는 경우도 흔하다. 자전거도로 위에 버젓이 불법주차를 하는가 하면 아이들이 그 위에서 뛰논다. 아찔하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선 보행자 마라토너 자전거 인라인스케이트 모두가 우측 한 방향으로만 움직인다. 추월할 때는 벨이나 큰 목소리로 신호를 보낸다.
서울시는 최근 2010년까지 현재 총 629km인 자전거 전용도로를 1014km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 있는 자전거도로를 잘 이용할 수 있도록 교통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 마침 오세훈 시장은 산악자전거 라이더다.
김훈 씨는 ‘자전거는 몸’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 바퀴는 발이다. 몸체는 뼈다. 부품과 부품의 연결 고리는 관절이다. 돌이나 흙길을 지날 땐 그 느낌이 찌르르 몸 전체로 전해 온다. 자전거는 걷는다. 나는 달린다. 하나가 된다.
■ MTB 에티켓…추월 욕심 내다간 사고 헬멧 등 안전장비 필수
자전거를 타는 데도 예절이 있다. 흥이 난다고 제멋대로 달리다간 큰코다친다. 우선 헬멧, 팔다리 보호대 등 안전 장비를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허리에 둘러매는 전용가방에 구급약 비상공구 등은 꼭 넣고 다니는 게 좋다. 험한 산이나 장거리 주행을 할 때는 혼자서 가지 말고 여럿이 무리지어 가는 게 안전하다.
여럿이 달릴 때는 속도 흐름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가려고 뛰쳐나가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연장자의 속도에 맞춰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러기 떼처럼 줄을 맞춰서 가는 게 안전하다. 자동차 길에서는 한 줄로 가야 한다. 들쭉날쭉 달리다간 커브 길에서 돌발 상황을 맞을 수 있다. 팔에 힘을 너무 주고 달리면 빨리 지친다. 자전거는 허리 힘으로 나아간다. 몸을 자연스럽게 약간 구부린 상황에서 허리에 힘을 줘야 한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 다치기 쉽다.
산에선 무조건 등산객이 최우선이다. 등산객을 놀라게 하면 안 된다. 될 수 있으면 등산객이 안 다니는 곳으로 피해 다녀야 한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