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비축용 쌀 매입 첫날인 20일 낮 경기 연천군 전곡읍 연천농협 미곡종합처리장.
농민 이강옥(46·연천군 신서면 대광2리) 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농부에게 제일 큰 수확의 기쁨이 이젠 없어졌어요. 곧 추석인데….”
이 씨의 하소연은 이어졌다. “연천농협이 사들이는 산물벼(말리지 않은 벼·40kg 기준) 가격이 지난해 5만 원대에서 올해 오히려 4만8000원대로 떨어져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제값을 못 받으니 계속 농사를 지어야 할지…. 저야 불만이라도 터뜨리지만 60세가 넘은 어르신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에요.”
국내 농촌 인구 중 60세 이상은 60%에 이른다. 이 씨가 사는 대광2리에는 모두 161가구가 살지만 대부분 60세 이상이고 40대 농업인은 이 씨를 포함해 2명뿐이다.
20년째 벼농사를 짓는다는 황흥용(61·연천군 신서면 대광1리) 씨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이날 황 씨는 올해 처음 수확한 산물벼 3400여 kg을 차에 싣고 왔다. 특등급 판정이 나 40kg당 4만9380원을 받았지만 이마에 깊게 파인 주름이 더 도드라졌다.
“요즘 쌀값에 만족하는 농민이 어디 있어? 이 가격으로는 농사짓기 힘들어. 정부가 북한에는 쌀과 비료를 그냥 준다는데….”
농협 직원은 “쌀의 산지(産地) 시가가 오늘 받은 가격보다 높게 확정되면 내년 1월 차액을 더 준다”고 농민들을 달랬지만 이도 쉽지는 않다. 전국 평균 쌀 도매가격은 20kg 기준으로 2004년 4만2000원대에서 2005년 3만9000원대, 2006년 3만6000원대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정부는 쌀값 하락에 따른 농가소득 감소를 쌀 소득보전 직불제로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산지 쌀값이 목표 가격(80kg에 17만83원)에 못 미치면 차액의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비료값과 농기구 사용료 등 생산비용은 늘어나고 쌀 소비는 줄어들면서 농민들의 불안감은 점점 커지고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싼값의 쌀을 막을 수도 없다. 아직도 한국의 쌀값은 국제시세보다 3∼5배 높다. 뚜렷한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기억 속에 있는 추수철의 풍경은 햇볕 쨍한 가을날 힘들여 지은 수확물을 내놓고 목돈을 챙겨 함박웃음을 짓던 농부의 모습이 아닐까. 문득 그 풍경이 그리워졌다.
김선우 경제부 ublim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