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없는 협상 속에서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나도 안다. 내가 대책 없는 낙관주의자라는 것을….”
1950년 9월 22일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미국의 정치학자이자 외교관인 랠프 존슨 번치 박사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흑인이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은 그가 최초였다.
당시 번치 박사는 저녁 식사를 하던 중 비서에게 이 소식을 들었다. 그는 “내가 왜 이걸 받아야 하나. 유엔의 평화 유지 업무는 상을 받으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번치 박사는 1904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찢어지게 가난한 데다 어릴 때 어머니까지 여읜 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온갖 일을 해야 했다.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은 엄청난 비극. 하지만 그에게는 할머니 나나가 있었다.
“그분은 내게 주어진 권리를 위해 세상에 맞서 싸우라고 했다. 하지만 조건이 있었다. 절대로 마음속에 분노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나는 번치 박사에게 이해와 관용, 인내심을 심어 줬다. 어린 나이의 그에게 이보다 더 큰 가르침이 어디 있으랴.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그를 대학에 입학시켜 장차 세상을 위해 큰일을 하게 만든 것도 나나였다.
번치 박사는 하버드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제국주의와 인종 문제를 연구했다. 그에게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깔려 있었다.
“세상에 전쟁을 좋아하는 국민은 없다. 전쟁을 좋아하는 지도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의 이런 믿음은 1948년 유엔에서 중재 업무를 맡게 되면서 빛을 발했다. 당시 중동 지역은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물러난 후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 간에 제1차 중동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조차 나서지 않을 만큼 서로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번치 박사는 어릴 때 배운 인내심과 냉정함을 잃지 않고 중재에 임했다. 이듬해인 1949년, 끝내 휴전이 이뤄졌다.
노벨위원회는 번치 박사의 중재 노력을 이렇게 평했다.
“비록 유엔에 몸담으면서 한 일이지만 이번 일은 순전히 한 개인의 지극한 노력의 산물이다. 아직 앞길이 창창한 만큼(당시 46세) 계속 인류의 평화를 위해 노력해 달라.”
그는 이 당부대로 평생을 유엔 평화활동과 민권운동에 전념하다 1971년 숨을 거뒀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