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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촘스키

입력 | 2006-09-25 02:59:00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입성이나 먹성, 심지어 독서편력도 그렇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레미제라블’과 ‘돈키호테’에 감명 받았다고 뉴욕타임스가 소개했다. 그래서 민중의 비참한 삶을 구제하는 방식도 돈키호테 같은 모양이다. 차베스는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의 ‘순수한 사기의 경제학’, 제러미 리프킨의 ‘수소경제학’도 좋아한다. 체 게바라와 마오쩌둥은 수시로 언급한다. 차베스가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차베스는 지난주 유엔 총회에선 놈 촘스키의 ‘패권인가 생존인가-미국의 글로벌 지배 추구’를 들고 나와 “20세기 세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려면 이 책을 보라”고 일갈했다. ‘세계지배 전략을 추구한 미국이 테러리스트 국가’라는 내용이다. 그 덕분에 이 책은 인터넷서점 아마존에서 판매 순위가 2만664위에서 이틀 만에 1위로 뛰었다. 차베스가 “촘스키를 생전에 만나보지 못해 유감”이라고 말하는 바람에 촘스키 집엔 확인 전화가 빗발쳤다.

▷멀쩡히 살아 있는 77세의 촘스키는 화내기는커녕 “내 책을 좋아한다니 반갑다”고 했다고 외신이 전한다. “차베스의 정책은 상당히 건설적이어서 관심 많다”고까지 했다니, 우리나라에선 ‘미국의 양심’ ‘실천적 진보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촘스키가 맞나 싶어진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촘스키를 ‘미국 좌파의 아이콘’이라고 표현했다. 진보적 신문으로 분류되는 뉴욕타임스는 “단언하건대 지금 그 책을 사는 사람들도 끝까지 안 읽을 것”이라고 했다.

▷좌파의 위선을 공격한 책 ‘내가 말하는 대로 하세요-행하는 대로 하지 말고’는 촘스키가 미국 국방부를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기구라고 공격하면서도 국방부에서 수백만 달러의 연구자금을 받았다고 했다. 영국 가디언지와의 회견에선 자본주의와 미국의 혜택은 한껏 누리면서 왜 반미와 반자본을 외치느냐는 물음에 “그럼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을 말란 말이냐”고 반문한 촘스키다. 우리나라에서도 촘스키 식 말투를 심심찮게 듣게 되는 세월이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