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자마자 손부터 내미는 이 남자, 그러나 악수도 채 마치기 전에 두툼한 손을 빼낸다. 뭔가에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향한다. 6개의 대형 스피커가 달린 스튜디오 중앙에 앉자마자 그는 버튼 하나를 눌렀다. 어쿠스틱 기타 소리로 시작된 그의 노래가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소개 하나 없이 연달아 10곡을 들려주니 40분이 흘렀다. 그제야 노래를 멈추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노래 좋죠? 가사가 예술이에요."
25일 오후 만난 가수 이승철에게 인터뷰 시작 전부터 압도당했다. "2년 간 치열하게 고민하며 만든 소리들"이라며 웃는 모습에서 그의 의도를 읽을 수 있었다. 26일 발매되는 8집 '리플렉션 오브 사운드' 앨범을 앞에 둔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이 앨범은 소리에 대한 '기획 음반'이에요. '왜 가요팬들이 한국 가요에 등을 돌렸는가'에 대한 고민부터 시작됐죠. 가요 시장은 죽었고 가요의 질은 점점 떨어지는 분위기 속에서 어떤 소리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 답을 찾아가듯 음반을 만들었죠."
그의 넘치는 자신감의 이면에 미국 출신 사운드 엔지니어 스티브 하치가 자리했다. 마이클 잭슨, 프린스, 엘튼 존 등 유명 가수들과 작업한 그가 이승철의 음반에 해법을 던져준 것. 네 박자 리듬에 기타, 피아노, 베이스, 드럼 등 4개 악기만을 사용해 원초적이고 편안한 소리를 담았다.
"가요계가 너무 유행만 ¤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이미 사람들은 가요가 식상하다며 듣지 않는데 가수들은 똑같은 음악만 '찍어내다'시피 하고 있죠.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떳떳할 수 있는 음반을 만들자는 결론이 났죠. 어쿠스틱하고 편안한 소리지만 빈틈이 없는…."
그의 말대로 8집은 마치 발가벗은 어린아이 같다. 어쿠스틱한 기타로 시작되는 앨범 첫 머리곡 '하얀새', 이어지는 타이틀 곡 '소리쳐', 재즈 풍의 단촐한 사운드가 귀를 편안하게 하는 '애니', '저 있잖아요' 등 수록곡 대부분에서 악기 연주와 그의 목소리가 합일됐다. 2년 전 발표한 7집 '더 리브롱 데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발라드 음악 인생은 21년 전 갑옷을 입은 듯 강하게만 들렸던 '로커 이승철'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가수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만 하지 않으면 돼요. 아집에 집착하는 순간 음악은 깨지게 돼 있죠. 늘 주변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편안해지는 법이죠. 조카뻘 되는 후배 작곡가들과 함께 음반을 만든 것도 내 안의 나를 없앴기 때문이죠. '소리쳐'를 만든 작곡가 (홍)진영이는 타이틀곡으로 뽑혔다는 소식 듣고 월세 40만 원짜리 방 안에서 임신 6개월 된 아내랑 밤새 울었대요. 진부하고 느끼한 '이승철' 표 음악을 담백하게 만들어 준 고마운 친구죠."
가수 생활 21년. '희야'를 부르던 미소년은 사라졌지만 여유로움을 안은 아저씨가 돼 팬들과 함께 늙어가고 있다. 간간이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그의 뱃살도 자연스럽게 보일 뿐이다. 그러자 "이래봬도 저스틴 팀버레이크 음악에 빠졌다"며 젊음을 과시한다. 어째 시간이 흐를수록 인터뷰가 아닌 '훈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그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친다.
"아, 훈계는 무슨 훈계! 그냥 이 음반이 버림받은 가요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첫 단추가 되길 바랄 뿐이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딱딱한 인터뷰 그만 하고 나가서 술이나 한 잔 하는게 어때요?"
김범석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