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앤올룹슨의 수석 디자이너 데이비드 루이스 씨는 디자인 영감을 일상과 우연에서 얻는다고 소개했다. 사진 제공 뱅앤올룹슨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뱅앤올룹슨 제품인 ‘베오사운드 9000’은 음악을 눈으로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콘셉트로 디자인됐다. 사진 제공 뱅앤올룹슨
덴마크 명품 오디오 디자이너 루이스 e메일 인터뷰
《‘보는 것이 즐거운 오디오’란 별명을 갖고 있을 만큼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한 덴마크의 명품 오디오 브랜드 뱅앤올룹슨. 국내 트렌드 세터와 럭셔리 마니아들이 실내 인테리어를 꾸밀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템 중 하나다. 지난해 창립 80주년 기념 전시회를 연데 이어 올해 최고급 65인치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TV ‘베오비전4’, 피라미드형 스피커 ‘베오랩4’, 소형 오디오 ‘베오사운드4’ 등을 국내에 선보이면서 뱅앤올룹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965년부터 뱅앤올룹슨의 제품들은 대부분 영국 출신 제품 디자이너인 데이비드 루이스(66) 씨의 손을 거쳤다. 오늘날 뱅앤올룹슨의 명성을 만든 일등공신이 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국내에서 루이스 씨는 아직 본격적인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의 디자인 철학과 창작 과정, 개인적인 이야기도 알려진 게 많지 않다. e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의 디자인 세계를 들여다봤다.》
● 꺼져 있어도 ‘주인공’인 제품
루이스 씨는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들은 “스위치가 꺼져 있는 상태에서도 공간의 중심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오디오와 TV는 음악을 들려주고 영상을 보여 줄 때 주인공이 되죠. 그러나 뱅앤올룹슨 오디오와 TV는 본래의 ‘임무’를 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도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꺼진 상태에서도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대화의 화제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는 “한국에서도 뱅앤올룹슨을 중심으로 실내 인테리어를 꾸미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들었다”며 이는 자신과 회사에 대한 ‘매우 큰 찬사’라고 반겼다. 이어 뱅앤올룹슨의 가치와 자신이 추구하는 디자인이 한국에서 잘 반영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음악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단순히 오디오의 모양이나 브랜드 때문에 뱅앤올룹슨을 구입하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에 대해선 닭과 달걀 중 어느 쪽이 먼저냐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뱅앤올룹슨을 구입하는 것 자체가 음악과 가까워지는 과정이죠. 아무리 디자인 때문이라고 해도 뱅앤올룹슨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을 사람은 없을 테니까요. 뱅앤올룹슨이 집에 있으면 음악을 듣는 시간,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일상이 디자인 영감의 창고
국적도 다르고 취향도 제각각인 전 세계의 다양한 소비자들을 40년간 만족시킬 수 있었던 디자인 영감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답변은 너무도 평범하다.
“어떤 문제의 답을 찾으려고 애쓰다가 쉽게 해결책이 떠오를 때가 있죠. 이처럼 우연하게 영감을 얻을 때가 많아요. 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가지 물건들, 젊은 시절의 추억, 잡지에서 본 그림, 자연의 모습 등에서 나도 모르게 아이디어가 생기는 거죠.”
그는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인 ‘베오사운드 9000’을 디자인할 때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던 젊은 시절의 추억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턴테이블에서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봤던 즐거운 기억이 ‘투명한 오디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
뱅앤올룹슨이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개발해 지난해 10월 유럽에서 출시한 명품 휴대전화 ‘세린’은 아시아에서 본 가옥 지붕과 양동이, 조개 껍데기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베오비전4의 디자인은 미술관에 걸려 있는 그림의 액자를 보다가 영감이 떠올랐다.
“특별한 영감의 창고는 없어요. 다만 멋진 조각이 많은 훔레백(덴마크 동부의 도시)의 루이지애나 미술관과 장인 정신이 깃든 전통품의 전시회를 자주 갑니다. 단순함을 강조하는 바우하우스 스타일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요.”
● 우연을 믿는다
루이스 씨는 서양인답지 않게 ‘우연’을 중요하게 여긴다. 디자인의 영감처럼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들도 우연으로 결정된 때가 많았다.
제품 디자이너가 된 것도 우연이었다.
“원래는 가구 디자이너 지망생이었어요. 그러나 가구 디자인 전공 강의가 정원을 초과해 어쩔 수 없이 산업 디자인 과목을 수강해야 했죠. 우연히 산업 디자인을 공부하게 됐지만 이내 빠져 들었고 지금은 제품 디자이너가 된 것을 큰 행운으로 생각합니다.”
뱅앤올룹슨과 일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영국 런던에서 만난 덴마크인 아내 마리안이 귀향을 원해 아내를 따라 덴마크 행을 택했다. 당시 취직을 했던 회사가 뱅앤올룹슨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그는 디자인 작업을 할 때 정확도를 높여 주는 컴퓨터 CAD 프로그램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제품을 직접 손으로 그리고 만들며 오감을 통해 다양한 ‘우연’과 ‘변화’를 경험하는 일대일 모델 작업을 선호한다.
루이스 씨는 코펜하겐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며 매주 금요일 뱅앤올룹슨 본사가 있는 스투루어에 가서 제품 디자인 회의를 주재한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