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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속의 오늘]1953년 NYT 기사서 ‘체제선전’

입력 | 2006-09-29 03:02:00


1950년대는 냉전(冷戰)의 시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체제경쟁은 자유언론의 본향(本鄕)인 미국 땅에도 ‘정부의 대(對)언론홍보정책’이라는 ‘기형아’를 탄생시켰다.

1953년 9월 29일 미국 뉴욕타임스에 ‘소련인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구소련 국민들이 스스로 돈을 벌어 집과 자산을 마련하기를 소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기사는 지금까지도 미 정부의 언론정책에 영향을 받아 탄생한 기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미국 언론은 구소련 국민들을 ‘평범한 미국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묘사했다. 소련인을 ‘뿔 달린 도깨비’ 정도로 묘사했을 법도 하지만 신문과 방송에 등장한 소련 사람들은 대부분 호감이 가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미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히틀러에 대항해 싸우는 우리 편”이라고 선전했다. 심지어 할리우드에서는 나치에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영웅적인 소련 군인이 나오는 영화가 줄줄이 만들어졌다. 전쟁 내내 ‘소련인은 좋은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전쟁이 끝나자 느닷없이 ‘소련은 미국의 적’이 됐으니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한 것도 당연했다.

이 대목에서 정부의 언론정책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9월 29일자 뉴욕타임스의 ‘아메리칸 드림’과 같은 기사는 미국 정부가 고심 끝에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언론을 통해 미국인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고 직접적이었다. ‘소련은 세계 지배를 꿈꾸는 공산 독재국가이지만, 소련인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자유와 풍요로움을 소망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한 소련인이 운 좋게도 집 지을 만한 작은 땅을 얻었다. 그는 제일 처음 무슨 일을 했을까? 그는 주변에 울타리부터 세웠다.” ‘자기 것’을 소중하게 여기는 기사 속 소련인의 모습은 미국인과 닮아 있다. 기사는 “소련의 공산주의 체제는 사유재산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더욱 뜨겁게 만들기만 했을 뿐”이라면서 체제와 사람들을 분리한다.

미국 정부는 언론정책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우선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국제적으로 과시했다. 궁극적 목표는 국민들에게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 국민들도 미국민을 부러워한다’는 체제우위의 확신을 심어 주는 것이었다. 비록 1957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림으로써 미국인들을 공황 상태에 빠뜨리긴 했지만 정부의 대국민홍보정책은 줄기차게 1950, 60년대 미 언론을 관통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