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빈곤층 비율은 18%로 2003년(16.9%), 2004년(17.4%)에 이어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2년 새 25만7000가구, 60만6000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이다. 반면 중산층은 2003년의 47.2%에서 46.1%로, 상류층은 24.1%에서 24.0%로 각각 낮아졌다. 가난한 사람은 늘고 중산층과 부자는 줄었으니 양극화가 심해졌다기보다 빈곤화가 확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세계경제포럼의 올해 국가경쟁력 순위를 보면 한국은 지난해 19위에서 24위로 떨어졌다.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공공부문의 취약성, 한마디로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줄곧 ‘큰 정부 아닌 일 잘하는 정부’를 내세워 온 것과는 딴판인 결과다.
그러나 80%가 넘는 압도적 다수의 국민이 노 정부에 등을 돌린 것을 몇 개의 지표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끊임없이 국민을 불편하게 만드는 ‘노무현 리더십’에 있다. 어떤 개혁도 국민의 삶에 실질적 향상을 가져오지 못하면 외면당하기 마련이다. 하물며 국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국민이 원하는 일에 집중하기는커녕 대연정(大聯政)이네, 전시(戰時)작전통제권 환수네 하며 불필요한 분란으로 나라를 시끄럽게 하니 개혁은 피로감을 넘어 분노와 증오를 확대 재생산하고, 결국 국가의 잠재성장력마저 고갈시킨다.
노 정권은 실패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밀려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충격을 극복할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아내고, 이를 추진할 힘을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미래지향적 협력에서 구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비주류의 콤플렉스와 턱없는 도덕적 우월감으로 ‘세상 뒤집기’에 몰두했다. 결과는 참담하다. 경제, 외교안보, 교육 등 나라를 지탱해야 할 모든 부문이 엉망이 돼 버렸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노 정권이 이제 거의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신뢰를 상실하면 리더십은 기능할 수 없다. 레임덕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국민이 새로운 리더십을 갈구(渴求)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새 리더십의 조건에서 ‘노무현 학습효과’는 상수(常數)가 될 것이다. 말만 많고 문제를 해결할 정책추진 능력은 없이 오만과 독선으로 편 가르기나 하는 편협한 리더십, 현실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이상과 명분에 사로잡혀 나라와 국민의 장래에 큰 부담을 안기는 즉흥적 리더십, 권위주의와 권위를 구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권위를 떨어뜨려 희화화(戱畵化)하는 경박한 리더십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리더십을 찾기란 쉽지 않다. 감성적 지역주의와 정파적 집단이해, 이미지와 바람 등 올바른 선택을 제약하는 요인들이 위력을 발휘할수록 왜곡된 선택을 가져올 수 있다. 민주화세력통합론이나 보수연합론도 선택의 눈을 흐리게 하는 세몰이가 될 위험성이 크다. 민주화 세력과 보수 세력을 대립적 구도로 놓는 것부터가 철 지난 이야기다. 좌우의 극단주의자들이 나라의 중심은 아니다. 상식이란 보편적 가치의 기반에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건강한 보수와 진보가 나라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들을 대립에서 상호의존적 관계로 이끌어내는 것이 진정한 통합의 리더십이다.
현실과 전망은 어떠한가. 열린우리당은 머잖아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외부에서 선장을 구하면 된다고 했지만 난파선에 새로 탈 선장은 없어 보인다. 결국 ‘반(反)한나라+비(非)노무현’ 성격의 신당(新黨)이 뜰 개연성이 높다. ‘이명박-박근혜-손학규 트리오’의 한나라당은 내부 경선을 둘러싼 경쟁의 내용과 수준이 본선 경쟁력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국민은 이들 세력의 움직임과 주요 인물들의 리더십을 주의 깊게 지켜보아야 한다. 어느 세력과 어떤 인물이 갈등과 분열을 통합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갈 수 있을지, 경제를 다시 일으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을지, 실용적 외교로 국가안보의 불안정성을 최소화할 수 있을지 미리미리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선출된 권력’에 다시는 배반당하지 않아야 한다.
전진우 大記者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