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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하임숙]검증안된 건강정보 호들갑

입력 | 2006-10-02 03:02:00


“우리 집에 플라스틱 물통 있어? 다 버리자.”

퇴근한 남편이 이렇게 말하기에 ‘드디어 우리 집에서도 시작됐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플라스틱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 때문에 남성이 여성화되고, 여자아이들이 월경을 조기에 시작하는 등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고발한 적이 있다.

이 방송을 본 수많은 주부가 그야말로 ‘패닉(공황)’ 상태에 빠졌다. 남편도 뒤늦게 인터넷을 통해 이런 내용을 접한 모양이다.

방송을 접한 주부들은 집에서 쓰던 플라스틱 물통, 반찬통, 젖병 등을 내다버리고 유리통을 사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밀폐용기 제조업체의 매출이 갑자기 뚝 떨어졌고 이 중 일부가 부도까지 날 지경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과 관련된 역학조사를 상당히 많이 진행했던 한 대학의 의대교수는 이번 방송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플라스틱 제품이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건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방송에서는 심한 월경통을 겪는 여성 한두 사람의 몸에서 환경호르몬 성분이 일반인보다 많이 검출됐다는 것을 근거로 플라스틱 제품을 많이 사용하는 게 문제인 것처럼 나왔지만 의학적으로는 환경호르몬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플라스틱 제품을 사용하면 인체에 환경호르몬이 들어오는지에 대해 의미 있는 역학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다”고 설명했다.

역학조사를 위해서는 적어도 수백 명을 대상으로 실험군과 대조군을 놓고 정밀한 방법으로, 그것도 오랜기간 검증해야 한다는 것.

그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환경호르몬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가 아직까지 대규모 자금을 투자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며 연구를 접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의학과 관련된 보도를 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굳이 참살이(웰빙)라는 용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 잘못된 정보가 가져다 주는 폐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방송사에서는 ‘소독하지 않은 내시경 때문에 질병에 감염될 수 있다’는 내용의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정작 의료계의 반응은 다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잘못 관리된 내시경 검사로 다른 질병에 감염될 확률은 지극히 낮다. 내시경의 위생이 무서워 검사를 안 한다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내시경 검사로 위암 대장암 등을 찾아낼 때 얻는 이익에 비해 다른 질병에 감염돼 얻는 손해가 훨씬 작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하임숙 교육생활부 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