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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신기욱]北핵실험 채찍을 들어야 할 때다

입력 | 2006-10-04 03:00:00


우려하고 예상했던 대로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꺼냈다. 미국은 대북 압박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포괄적 접근’이라는 어정쩡한 입장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다.

핵실험은 7월 초 미사일 발사 실험 강행으로 미국을 압박하려다 유엔의 제재 결의에 봉착한 북한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꺼내 들 것으로 예상했던 일이다.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근본 목적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한쪽에선 체제와 경제 지원을 보장받기 위한 협상용으로 보는 반면 다른 쪽에선 정말로 핵 국가가 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협상용으로 핵을 개발하였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북한 지도부의 견해가 바뀌었을 가능성도 있다. 핵보다 더 확실한 안보 수단이 없다고 믿고 이라크의 길보다는 파키스탄의 길을 가겠다는 방침을 굳혔을지 모른다. 6∼8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으로선 향후 1년이 명실상부한 핵 국가가 될 호기라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 근거는 다섯 가지다.

첫째, 핵문제가 파국으로 치달은 책임을 미국에 돌릴 수 있다. 미국이 은행계좌 동결 등 압박정책을 지속하는 상황 속에서 자국의 안보를 위해 불가피하게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북한 내 협상파의 입지가 축소된 현 상황에서 군부 내의 이러한 논리가 힘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둘째,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핵실험은 핵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핵 전문가들에 의하면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했던 정도의 플루토늄 핵폭탄은 실험이 꼭 필요하진 않지만 미사일 장착용으로 만들기 위해선 실험이 필요하고 또 실험으로 얻은 데이터는 향후 핵 프로그램 개발에도 매우 유용하다고 한다.

셋째, 타이밍도 괜찮다. 한국은 내년에 대선이 있고 미국 역시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임기가 후반으로 접어드는 데다 이라크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미국이 강력한 대응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넷째, 중국이나 한국이 미일이 주도하는 대북 압박에 공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란 계산도 할 것이다. 특히 한국 정부의 성향으로 보아 초기엔 비교적 강경하게 반발하는 듯하다가도 실질적으로 북한 제재 문제에 이르면 어쩔 수 없이 현상 유지 쪽으로 주저앉을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도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핵실험은 한미 간의 간격을 더 벌릴 수도 있고 일본의 군비확장을 촉진해 중-일 간의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다. 이러한 지정학적 구도가 북한으로 볼 때 꼭 불리하진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은 한국 정부가 될 것이다. 발사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가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다 괜스레 일본만 비난하고 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던 지난번 미사일 발사 실험 때보다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

국제사회는 한국 정부의 분명한 태도를 원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의 핵 보유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지만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해도 별 대응이 없었다. 한국과 미국의 생각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양국 모두 북한이 핵 국가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구체적이고 확실한 태도 표명이 있어야 한다.

북한 핵문제는 ‘포괄적 접근’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해결할 사안이 아니다. 북한이 핵실험 카드를 꺼냈으면 이제 한미 양국의 지도자는 어려운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때로는 채찍이 당근의 효용성을 높일 수도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할 경우에 대비해 한국 정부는 신속하고 적절한 대응을 위해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