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한국 중산층, 美 닭공장으로 간 까닭은?

입력 | 2006-10-04 19:27:00


'그들은 왜 닭 공장에 갔을까?'

지난해 4월 미국 조지아 주 애틀랜타의 일간 '애틀랜타 저널 콘스티튜션'은 한국에서 비교적 생활수준이 높았던 중산층 출신들이 미국 시골의 닭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보도한 일이 있다.

이들은 왜 '한국의 중산층' 대신 '미국의 막일꾼'을 택했을까. 이런 의문을 안고 지난주에 이들이 일했다는 조지아 주의 닭 공장을 찾아갔다. 닭 공장이 있는 클랙스턴은 애틀랜타에서 남쪽으로 자동차를 타고 꼬박 4시간을 달려야 했다. 전형적인 미국 남부의 시골마을이었다. 가는 길에는 면화 밭과 작물을 담는 사일로가 간간이 보일 뿐 드넓은 평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그런데 이들은 공장에 없었다. 비숙련 이민에 적용되는 '의무 복무기간' 1년을 채운 뒤 새로운 생활을 찾아 미국 전역으로 뿔뿔이 떠난 뒤였다. 공장에는 멕시코인과 흑인 근로자들만 가득했다. 한국인들의 정착촌이었던 스테이츠보로의 아파트에도 이들은 없었다.

수소문 끝에 애틀랜타에 살고 있는 닭 공장 출신 이민자 5명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사진 촬영은 물론 신분노출을 극도로 꺼려했다. 익명보장을 전제로 만난 이들은 모든 미국영주권(그린카드)을 땄거나 혹은 영주권 최종 단계에 있었다.

▽닭 공장 생활 해보니…=닭 공장 일은 미국에서도 3D직업으로 분류되는 직종. 따라서 한국에서 육체노동을 해본 적이 없던 대부분의 이민자들에게는 고되고 험한 일이었다고 한다. 중소기업에서 20년 넘게 근무했다는 김정식(이하 모두 가명·50) 씨는 "작업공정이 초 단위로 진행된다"며 "'인간 기계'가 되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닭 공장 일을 그만둔 지금도 과도한 업무 후유증으로 허리와 관절이 많이 나빠졌다"며 "근무 도중 개인전화도 걸고, 잡담도 할 수 있는 한국 직장문화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털어놓았다.

최수근(44) 씨는 "업무 강도보다는 일하는 도중 담배 한 대 피울 시간도 주지 않는 빡빡한 미국의 근무체제가 견디기 힘들었다"며 "휴식시간이 끝나고 단 1초라도 늦게 돌아오면 매니저가 반드시 경고했다"고 말했다.

여자들의 업무는 남자들 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했다고 한다. 가공된 닭을 용기에 담는 일을 했다는 박정숙(43·여) 씨는 "한국에서 한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견딜 만했다"며 "다만 위생문제로 공장 안 온도를 항상 낮게 유지해 '추위'가 가장 참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간당 6.5~8.0달러를 받았다. 토, 일요일은 근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한달 평균 소득은 1000달러(약 95만 원) 초반 수준. 때문에 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생활비가 부족해 닭 공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돈을 써야 했다.

▽닭 공장에 온 이유=불안한 미래와 자녀 교육 때문에 왔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대기업에서 15년 넘게 직장생활을 해온 최 씨는 "당장 생활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지만 선배들이 50도 안돼 회사를 떠난 뒤 퇴직금마저 까먹는 것을 몇 차례 본 뒤 이민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넓은 세계에서 공부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전형적인 강남 학부모 출신. 전문직인 남편은 한국에 남겨 둔 채 자녀 2명과 함께 이민 왔다.

박 씨는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중상위권 성적은 유지했지만 한국에서 이른바 일류대에 들어가기는 힘들다고 봤다"며 "아예 영주권을 따면 아이들을 미국에서 교육도 시키고 적은 비용으로 주립대도 다닐 수 있는 등 경제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금 당장은 일을 하지 않고 남편이 부쳐주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김 씨도 "대학생이던 아이가 '친한 친구들이 모두 유학을 떠났다'며 자기도 보내달라고 졸랐다. 그런데 봉급쟁이 형편에 유학비용을 대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아예 새로운 도전을 찾아 전 가족이 이민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영주권 '이후'가 더 큰 도전=인터뷰에 응한 이민자들은 대부분 닭 공장을 통한 영주권 취득방식이 "비록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방법에 비하면 믿을만한 방법"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대기업 계열사에서 기술직으로 20년 가까이 근무했다는 강성주(54) 씨는 "1999년 미국에 온 뒤 그동안 종교이민 등 많은 방법을 통해 영주권을 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가 결국 닭 공장을 통해 영주권을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닭 공장 이민도 워낙 불법브로커도 많은 만큼 조심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이들은 영주권을 취득했다고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다. 김 씨는 "오전8시부터 오후8시까지 부부가 힘들게 일을 하고 있지만 한 달에 4000달러 벌기가 쉽지 않다"며 "초기 이민과는 달리 세탁소처럼 한인들이 많이 하는 소규모 업종도 경쟁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섣불리 뛰어들기가 겁이 난다"고 말했다.

최 씨도 "현재 투 잡을 뛰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다. 집 사람도 일을 시작했지만 생계를 꾸려가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도 얼마 전부터 상황이 좀 나아져 한달에 500달러를 넣는 적금을 들었는데 눈물이 나왔다. 미국에서 돈 벌기가 정말 힘들다"고 토로했다.

학생 비자로 미국에 왔다가 닭 공장을 통해 영주권을 딴 조성식(35) 씨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조 씨는 "일본어를 하는 덕분에 일본계 회사에 취직했다"며 "이미 닭 공장 수속에 들어갔던 비용(약 2만7000달러)은 모두 갚았다"고 말했다.

강 씨는 "미국에서 열심히 일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는 모두 옛말"이라며 "한국에서 연간소득이 6000만원을 넘는 사람이 미국에 이민 오는 것은 바보 짓"이라고 잘라 말했다.

애틀랜타-클랙스턴(미국 조지아 주)=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美 3D직종 일손부족 영주권 따기 쉬운편

대부분 대졸에 의사까지…수천명 대기

▼닭 공장에 왜 몰릴까▼

한국의 일부 중산층이 닭 공장 이민에 몰리는 데는 까닭이 있다.

차질 없이 절차가 진행된다면 다른 방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에 '그린카드(영주권)'를 손에 넣을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이민비자는 가족이민, 투자이민, 취업이민, 종교이민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미국에서 가족과 관련해 특별한 연고가 없거나 본인이 탁월한 능력을 갖춰 미국 대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취직하지 않는 한 영주권을 따기가 쉽지 않다. 일부 한국인들이 선호하는 종교이민도 한국인에게 배정된 숫자가 적어 사실상 '하늘의 별 따기' 라는 것.

취재진이 만난 닭 공장 이민자들 가운데 한국에서 수속을 밟은 사람들은 2년6개월 정도 기다린 다음 한국에서 이미 취업이민 비자를 받고 미국에 들어왔다. 수속비용은 2만7000달러 안팎.

닭 공장 이민은 비숙련 이민에 해당한다. 비숙련 이민은 현지인으로 일자리를 채울 수 없는 미 기업이 외국인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도록 한 것. 소 도축, 닭 공장, 청소용역, 메기가공 등 다양하다. 닭 공장 일도 힘들기는 하지만 소 도축 등 다른 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선호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선 닭 공장 이민을 신청하고 줄 선 사람들이 수천 명에 이른다. 대부분 대학졸업자이며, 의사 등 전문직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취재진이 만난 닭 공장 이민자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미국 정부가 정한 할당량이 소진되면서 현재로선 닭 공장 이민이 잠정 중단됐기 때문.

최근 미국에선 현지 한국계 이주공사가 폐업을 선언하면서 닭 공장 이민을 신청했던 수 백 명의 한인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또 닭 공장 이민을 불법 알선하는 브로커들도 많아 믿을만한 이주공사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