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 유 용 주
빈집 뒤 대밭 못미처
봐주는 사람 없는 채마밭 가
감나무 몇 그루 찢어지게 열렸다
숨막히게 매달리고 싶었던 여름과
악착같이 꽃피우고 싶었던 지난 봄날들이
대나무 받침대 세울 정도로 열매 맺었다
뺨에 붙은 밥풀을 뜯어먹으며
괴로워했던 흥보의 마음,
너무 많은 열매는 가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거적때기 밤이슬 맞으며
틈나는 대로 아내는 꽃을 피우고 싶어했다
소슬한 바람에도 그만 거둬 먹이지 못해
객지로 내보낸 자식들을 생각하면
이까짓 뺨 서너 대쯤이야
밥풀이나 더 붙어 있었으면
중 제 머리 못 깎아
쑥대궁 잡풀 듬성한 무덤 주위로
고추잠자리 한세상 걸머지고 넘나드는데
저기, 자식들 돌아온다
낡은 봉고차 기우뚱기우뚱
비누 참치 선물 세트 주렁주렁 들고서
- 시집 ‘크나큰 침묵’(솔) 중에서
바야흐로 삼천리 방방곡곡 빈집들이 수런거리는 때이다. 여름내 적막하던 시골집마다 웃음소리가 삽짝을 넘고, 아이들 재잘거리며 고샅을 뛰어다닌다. 노모들 맨발로 뛰어나가 ‘비누 참치 선물 세트’가 주렁주렁 열린 아들, 손자 손녀, 며느리 손을 맞잡는다. 추석은, 찹쌀풀이다. 추석은 오늘날 산업사회 속에 콩 됫박 엎지르듯 뿔뿔이 흩어진 가족을 불러 모아 찐득한 정과 우애의 풀로 기어코 되붙여 놓고야 마는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저마다 ‘숨 막히게 매달려’ 왔으면서도, 서로를 ‘거둬 먹이기 위해’ 애쓴 마음들 모여서 서로의 등을 두드려 주는 것이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 시인 반칠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