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8일 북한은 남북 대화가 중단된 지 81일 만에 판문점에서 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 접촉을 하자고 전격 제의해 왔다. 7월 5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남북 관계마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북측이 먼저 대화를 제의해 온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다만 북측이 “북남 간 이미 이룩한 군사적 합의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토의하자”고만 밝혀 뭘 논의하자는 것인지 분명치 않았다. 그래도 정부는 대화 재개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이틀 뒤인 9월 30일 대화 제의를 수용했다.
그러나 2일 오전 10시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열린 군사실무회담 수석대표 접촉은 불과 2시간 만에 별다른 합의 없이 끝났다. 북측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비방전단 살포 및 개성공단과 금강산에서의 ‘통행 질서’ 문란을 따졌을 뿐이다.
남측 당국은 접촉이 끝난 뒤 ‘북측이 이런 뻔한 주장을 하기 위해 3개월 만에 대화 재개를 요구했을까’라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궁금증은 풀렸다. 북한이 3일 오후 핵실험을 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뒤로는 칼을 빼드는 북한의 ‘뒤통수치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7발의 미사일을 발사하기 이틀 전인 7월 3일에도 북측은 남북장성급 군사회담 연락장교 접촉을 제의했다. 북한이 서해상의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꺼내 결렬시켰던 5월의 4차 장성급 군사회담 이후 중단된 장성급 회담의 재개 문제를 토의하자는 것이 대화 제의 이유였다.
당시에도 정부는 대화에 응하겠다는 방침을 통보하려고 했지만 5일 새벽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바람에 접촉 연기를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 1999년 6월의 연평해전 당시에도 남북은 장성급 군사회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성동격서(聲東擊西·동쪽에서 소리를 지르며 서쪽을 때린다) 전법에는 실소가 나올 뿐이다.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자신들에게 유화적인 남측을 이용하는 북한의 얕은수가 남측의 신뢰를 밑바닥부터 허물어뜨리고 있다. 매번 뒤통수를 맞는 남측은 더 딱하지만….
하태원 정치부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