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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미사일 발사때와는 상황 달라”

입력 | 2006-10-05 03:06:00

국회에 모인 장관들 북한의 핵실험 선언으로 4일 긴급 소집된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 참석한 이종석 통일부 장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윤광웅 국방부 장관(왼쪽부터)이 국회 보고 내용을 조율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정부는 4일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관계 장관회의와 송민순 대통령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주재로 장관급 안보정책조정회의를 열고 ‘북한 핵실험 시 대처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안보정책조정회의를 마친 뒤 “북한이 핵실험을 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지금과 같이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넘어갈 수 없고 미사일 발사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미사일 발사 후 대북 쌀 차관 제공 및 비료 지원을 중단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의미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 중단=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할 경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 헌장 7장을 원용한 대북 제재 결의문을 채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유엔 헌장 7장은 안보리가 유엔 회원국들에 평화를 위협하는 국가를 상대로 경제관계의 전부 또는 일부 중단과 외교관계 중단 요청이 가능하게 규정하고 있다.

남북간 경제관계를 대표하는 사업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이다. 북한이 지난해 이 두 가지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소득은 1790만 달러(약 169억 원)에 달한다. 따라서 이 두 사업의 중단 내지 축소 조치는 정부의 단호한 대처라는 상징적인 효과뿐 아니라 실질적인 경제 제재 효과도 볼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리가 유엔 헌장 7장을 원용한 결의문을 채택하면 이 사업들을 중단 혹은 축소시키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한국 정부 측에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돈줄을 차단하라는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만든 ‘북한 핵실험 시 대처 방안’ 매뉴얼엔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 중단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먼저 금강산 관광에 대한 조치를 취한 뒤 북한이 그에 상응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경우 수위를 높여 개성공단 사업을 중단 또는 축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두 사업은 민간 사업자들이 하는 것이지만 정부가 이를 중단시킬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분명히 있다”고 밝혔다. 남북교류협력법은 정부가 금강산 관광 및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관리 감독 및 조정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개성공단 분양 무기 연기=북한이 핵실험 방침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당장 개성공단 1단계 본 단지 12만 평의 분양이 장기간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한 차례 연기됐던 개성공단 분양을 다음 주 중 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이달 중순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핵실험을 하려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도 시장의 운영원리를 존중할 생각”이라며 분양 연기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대북 시멘트 지원 논란=그러나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행동으로 옮길 때까지 시멘트 등 대북 수해 지원을 중단하지 않을 방침이다.

정부가 100억 원을 들여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전달하기로 한 대북 수해 지원 물자 중에는 시멘트 10만 t이 포함돼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실험 선언 전 4차례에 걸쳐 2만3165t을 지원했으며, 핵실험 선언을 한 다음 날인 4일 오후 1시 또다시 인천항에서 6400t을 실은 선박을 북측 남포항으로 보냈다. 문제는 시멘트가 지하 핵실험을 위한 갱도 건설에 필수적인 물자라는 점.

이를 두고 정부 안팎에선 지하 핵실험을 위한 갱도 건설에 필수적인 시멘트를 북한에 전달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은 핵실험을 하면서 1km 거리의 갱도 건설을 위해 시멘트 6000포대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중심당 이인제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통일외교통상 및 국방위원회 연석회의에서 “핵실험 필수물자인 시멘트를 북한에 보낸다면 북한과 국제사회에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겠느냐”며 “시멘트를 실은 배를 즉각 회항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북한에서 생산되는 시멘트는 1년에 500만 t이 넘는다”며 “대북 지원 시멘트가 핵실험에 쓰일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