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푸르트 도서전 간담회에서 나치 복무 전력을 고백한 이후의 심경을 밝힌 작가 귄터 그라스. 사진 제공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조직위원회
8일(현지 시간) 폐막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화제의 중심에 놓인 인물은 원로 노벨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79)였다. 올여름 출간된 자서전 ‘양파 껍질을 벗기며’에서 10대 시절 나치 친위대 복무 전력을 고백한 뒤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관심을 반영한 듯 6, 7일 열린 그의 간담회에는 청중이 몰려들었다.
간담회장에서 청중은 그를 박수갈채로 맞았다. 62년 만에 고백한 나치 전력에 대한 비난과는 거리가 먼 듯한 분위기였다. 사회자가 자서전의 나치 관련 대목을 읽어준 뒤 ‘왜 60년 넘도록 침묵했느냐’고 묻자 그는 “수치심 이상으로 깊은 고민이 있었다”고 대답했다.
“10대 때 벌어졌던 일, 당시의 혼란스러운 의식 상태와 행동을 스스로 이해하고 나 자신이 받아들이는 기간이 필요했다. 거의 평생이 걸렸지만, 그만큼 중대한 일이었다.” 그는 “원래 잠수함 부대를 자원했다. 그것도 후회스럽지만 나치 친위대는 17세 때 강제 징집된 것”이라고 말했다.
나치 전력 고백으로 인해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아온 그의 명예는 실추됐다. 그러나 그라스는 “몸무게가 좀 빠졌을 뿐 생각과 행동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앞으로 정치적 발언은 삼갈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국민이므로 계속 정치에 대해 쓰고 말해야 한다”며 독일 정부의 건강보험 개혁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나치 전력 고백 이후 과거의 부담에서 벗어난 듯 그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관련한 농담을 들려주기도 했다. “나치 부대에 있을 때 성직자가 되겠다는 친구 요제프와 ‘둘 중 누가 더 고위 성직자가 될지 내기하자’면서 동전 던지기를 했는데 요제프가 이겼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나와 동갑이고 10대 때 나치 전력이 있었던 것을 보고 친구 요제프가 아닐까 생각했다. (청중이 박수를 치며 웃자) 농담이다.”
그는 “이제야 자식, 손자들과 과거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돼 편안하다”며 “책을 내기 전 인터뷰를 한 것은 후회하지만 고백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