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법조계 갈등은 직접적으로는 ‘공판중심주의’ 도입 등이 주요 쟁점이 되면서 법원, 검찰, 변호사 업계 간 위상 문제를 둘러싸고 빚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최근 10여 년 동안 급속도로 진행된 법조계의 양적 팽창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다. 법조 인력의 급증은 필연적으로 내부의 치열한 경쟁을 불러왔고, 이것이 영역 다툼의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법조계는 법률시장의 전면 개방을 앞두고 이미 무한경쟁시대에 들어간 상황이다.》
대형 로펌(법률회사)에 근무하는 K(33·사법시험 40회) 변호사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서울 강남의 영어학원을 찾아 3∼4시간 영어 공부에 매달린다. 평일에는 밤 12시 넘어서까지 일하기 일쑤여서 몸은 천근만근 무겁지만 앞날을 대비하는 데 소홀할 수 없기 때문. 그는 3년 뒤 미국 유학을 계획하고 있다.
이공계 출신인 K 변호사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로펌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10∼20년 뒤까지 경쟁력을 갖추려면 외국 변호사 자격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일반 변호사 자격증은 물론 가능하면 특허 변호사(Patent Lawyer) 자격증까지 딸 생각”이라고 밝혔다.
법률시장 개방이 다가오면서 법조계가 들썩이고 있다. 아직 법률시장 개방 일정과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지만 많은 법조인의 마음이 바쁘다.
변호사 1만 명 시대를 맞은 변호사 업계는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보면서 전문성 확보 등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의 변호사’인 판검사들 역시 예외는 아니다. 변호사 개업에 대비해 금융, 지적재산권 분야 등 나름대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업무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양적 팽창, 치열해진 내부경쟁=1981년 300명이었던 사법시험 합격자는 1996년 500명으로 늘어난 뒤 해마다 100명이 증가해 2001년부터는 매년 1000명을 뽑고 있다.
이는 곧바로 변호사 수의 증가로 이어졌다. 9월 말 현재 개업 변호사는 7615명. 1990년 1803명에 비해 4배가량 늘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 등록된 전체 변호사는 1만46명이다. 이르면 2009년 로스쿨이 도입될 경우 변호사 증가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판검사들 역시 양적 팽창에 따른 경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 있다. 판사 정원은 1990년 1124명에서 올해 2124명으로, 검사는 같은 기간 787명에서 1627명으로 각각 두 배가량 늘었다. 대법관이나 검찰총장은 하늘의 별따기가 됐고, 법원장이나 검사장 문턱을 넘기 전 대부분 옷을 벗어야 한다.
여기에 법률시장이 활짝 열리면 법조계는 ‘무한경쟁’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외국 로펌이 국내 로펌과 합작하거나, 국내 변호사를 고용할 수 있게 되는 법률시장 완전 개방이 이뤄지면 일단은 국내 대형 로펌들이 타격을 입게 된다. 외국 대형 로펌들이 첨단 기법을 앞세워 기업 인수합병(M&A), 금융, 증권 분야 등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할 것이기 때문.
이후에는 연쇄적으로 전체 법률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도미노 효과’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경쟁에서 낙오한 대형 로펌은 기존의 중소 로펌이 맡던 중간 규모의 자문·소송대리 업무로 눈길을 돌리고, 중소 로펌은 개인 변호사들이 맡아왔던 일반 소송대리 사건까지 넘보는 생존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외국 대형 로펌들이 스카우트 대상으로 꼽는 전문성을 갖춘 능력 있는 변호사의 몸값은 더욱 올라가 변호사 업계의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대한변협을 중심으로 ‘전문변호사 제도’ 도입을 추진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전문변호사 제도는 지적재산권, 무역 등 특정 분야에서 일정 기간 교육을 받고 시험을 통과한 변호사를 전문변호사로 인증해 주는 제도다.
검찰 내에서는 전통적인 인기 부서였던 공안부와 특수부가 퇴조하는 대신 금융조세조사부나 외사부가 인기부서로 떠올랐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검사는 “공안부 특수부 경력으로 무난히 검사장까지 승진하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이제는 검사장 승진을 기대하기도 어렵고, 언제라도 변호사 개업을 할 때 전문성에서 유리한 분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판사들 중에는 요즘 지적재산권이나 특허권 쪽으로 석박사 과정을 택하는 사람이 많다. 법률시장이 개방됐을 때 외국 로펌들이 관심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다.
▽가시권에 들어온 법률시장 개방=2001년 시작된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에서 한국은 2003년 ‘외국법 자문사법’ 도입을 주 내용으로 하는 1차 양허안을 제출했다. 외국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에게 해당국의 법률에 대해 자문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주는 것이 핵심 내용. 하지만 DDA 협상은 사실상 중단 상태다.
지금의 변수는 한미 양국 정부가 내년 3월까지 협상 타결을 목표로 삼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올 8월 김준규 법무부 법무실장은 10대 로펌 대표들과의 간담회에서 “미국 측이 법률시장 개방을 매우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다”고 법률시장 개방이 가시권에 들어와 있음을 설명했다.
물론 법무부 측은 “전면 개방은 피하고 단계적 개방을 한다는 방침은 확고하다. 로펌의 대형화, 전문화를 지원하는 방안 등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고 법률시장 개방이 무조건 피해야 할 것도 아니다. 대한변협이 발표한 ‘법무시장 개방이 법무 비용 및 법무 수요에 미치는 영향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먼저 국제법무 관련 서비스의 품질이 높아지고 선택의 폭도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완전 개방 단계에 이르면 국내 법률 서비스에도 이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가격 면에서는 단순하고 정형화된 사건에서는 변호사 비용이 내려가겠지만 중요하고 복잡한 사건은 가격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분석됐다. 오히려 국내에 진출하는 외국 로펌이 유능한 국내 변호사를 대거 스카우트하고 의뢰인에게 시간 기준으로 비용을 청구하면 고급시장의 법률 비용은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외국은 어땠나
한방에 무너진 독일… 18년 맷집키운 일본
한국에 앞서 법률시장을 개방한 외국의 사례를 보면 철저한 준비 없는 개방은 국내 변호사 업계, 특히 대형 로펌(법률회사)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국가는 독일. 단일 국가로는 법률시장 규모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독일은 1999년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영국과 미국계 로펌들이 물밀듯 들어와 독일 로펌들을 집어삼켰다.
전통적으로 독일 법조계는 법률이론에 강한 반면 영미계 로펌들은 계약 실무에 강하다. 그렇다 보니 계약과 협상이 중시되는 기업자문 분야에서 독일 로펌들은 맥을 추지 못했다. 한국처럼 개인 변호사 위주로 구성돼 있던 법률시장의 구조도 영미계 로펌들이 쉽게 영역을 넓힐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였다.
그 결과 현재 독일 10대 로펌 가운데 토종 로펌은 헨겔러 뮐러, 글라이스 루츠 두 곳만 남았다. 나머지 로펌은 영미계 로펌에 합병됐다.
일본은 독일과 달리 오랜 기간에 걸친 단계적 개방의 과정을 거쳤다. 1987년 외국 변호사가 외국법에 한해 자문 업무를 할 수 있도록 제한적으로 허가한 뒤 지난해에야 비로소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1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본 로펌들은 그 규모를 키우면서 경쟁력을 강화했다. 그 결과 소속 변호사가 150명을 넘는 상위 1∼5위 로펌은 여전히 토종 로펌이 지키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일본 사회의 특성도 해외 로펌의 시장 잠식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일본 역시 개방의 파도를 피하지는 못했다. 6∼20위의 로펌은 대부분 영미계 로펌과 전략적 제휴를 선택하거나 합병됐다.
싱가포르는 다소 특이한 과정을 겪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을 겪으며 일찍부터 외국 변호사들의 활동을 허용하다가 2000년 외국 변호사의 법률회사 설립을 허가해 시장을 전면 개방했다. 하지만 싱가포르의 법률시장 규모가 워낙 작은 데다 최근 경기 부진까지 겹치면서 외국 자본이 들어간 합작법률회사는 6개 정도에 불과하다.
박용철 서강대 법학과 교수는 “국내 법률시장 규모가 아직 외국 대형 로펌들의 구미를 당길 정도로 성장하지 않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며 “로펌들은 전문화 특성화로 틈새시장 공략을 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