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쿠도나루도, 헤리코푸타…. 맥도널드와 헬리콥터의 일본어 발음이다. 우리는 이런 일본인의 발음에 우월감을 느낀다. 그러나 정작 ‘귀신의 소리도 흉내 낼 수 있다’는 한글의 표기법이 일본어의 영향으로 절름발이 신세가 된 것은 모르고 있다. 최성철(69·사진) 씨는 인터넷에서 ‘뿌리깊은나무’라는 ID로 한글의 잠재력을 가로막는 현행 외래어표기법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글 옹호론자다.》
“벤또, 다꾸앙 등 우리말에 스며든 일본어는 추방 운동을 펼치면서 정작 우리말 어법을 망치는 일본어의 흔적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의 골격은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만들어졌는데 당시 일본 유학생들이 주축이 됐고, 그들의 외국어 발음도 일본식이었다는 점을 직시할 때입니다.”
그에 따르면 현행 외래어 표기법에서 ‘받침에는 ㄱ, ㄴ, ㄹ, ㅁ, ㅂ, ㅅ, ㅇ만을 쓴다’고 제한한 것이나 ‘파열음 표기에는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규정은 받침이 없고 된소리 발음이 드문 일본식 외국어 발음을 흉내 낸 결과라는 것. 또 제5항 ‘이미 굳어진 외래어는 관용을 존중한다’는 규정은 일제강점기 국내에 이식된 일본식 외국어 발음을 우리말로 둔갑시킨 독소 조항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기껏해야 100개 음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일본어의 사슬에 천문학적 수의 발음을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의 손발을 묶는 결과를 낳았다는 설명이다. 그 결과 독일어 ‘arbeit’가 ‘알바적’이라는 정확한 표기를 놔두고 일본어 표기 ‘아루바이토’를 흉내 낸 ‘아르바이트’로 굳어졌고, ‘뉴즈’ 또는 ‘누즈’로 표기돼야 할 ‘news’는 ‘뉴스’로 둔갑했다는 것이다.
최 씨는 훈민정음의 본래 표기법을 연구해 보면 이 같은 주장이 더욱 설득력 있다고 강조한다.
“훈민정음 해례에 따르면 영어 v 발음은 ㅸ, f 발음은 ㆄ, sh 발음은 ㅿ, r 발음은 ㄹ, l 발음은 ㄹㄹ에 해당합니다. 또 훈민정음에는 첫소리에 자음 17개, 가운뎃소리에 모음 11개, 다시 끝소리에 17개의 자음을 쓰게 돼 있는데 필요하면 이들을 각각 3개까지 쓰도록 하고 있어요. 이대로 하면 한글은 실로 귀신의 소리까지 흉내 낼 수 있는 소리의 보고입니다.”
최 씨는 더 나아가 현행 우리말 표기법이 기본 자모 24자에 쌍자음 등을 포함해 40개 자모로 제한한 것은 한글의 세계화에 역행한다고 역설한다.
“국제음성학회에서 한글을 국제음성기호로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한글로 다양한 외국어를 모두 표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본고장에서 어색한 외래어 발음표기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스스로 엄청난 잠재력을 썩히는 거죠.”
그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국어 연구자가 아닌 한글 연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어 연구자가 우리말 지킴이라면 한글 연구자는 우리말에 없는 발음의 소릿값을 어떻게 줄 것인가를 연구하는 ‘우리말 넓힘이’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최 씨는 20여 년 전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가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한글 표기의 우수성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表意子’→‘의사표시자’…일본식 민법용어 바꾼다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용어를 쉬운 우리말로 바꾼 민법 개정안이 올해 안에 발의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은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식 한자로 이뤄진 민법의 용어와 문장을 쉬운 우리말로 순화한 개정안을 마련해 올해 안에 발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表意子(표의자)’는 ‘의사표시자’로, ‘通情(통정)한 虛僞(허위)의’는 ‘서로 합의한 뒤 허위로 한’으로, ‘忍容(인용)할 의무’는 ‘참고 받아들일 의무’ 등으로 바뀐다. ‘口授’(구수·말로 전함), ‘俱存’(구존·모두 살아 있음), ‘嚴封捺印’(엄봉날인·단단히 봉하여 날인함), ‘辨識’(변식·판단하여 앎) 등 난해한 표현들도 쉬운 말로 고칠 계획이다.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