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연간 6억 대 규모의 신흥 시장을 잡아라.’
고가(高價) 폰 위주의 ‘프리미엄’ 전략을 고수해 온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저가 폰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그동안 ‘브랜드 이미지 보호’를 이유로 저가 폰 생산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여 왔다.
○ 브릭스등 신흥시장 진출 선언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초 미국 경제주간지 ‘배런스’와의 인터뷰에서 휴대전화 사업과 관련해 “신흥 시장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것은 그동안 “프리미엄 전략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주장해 온 삼성전자의 저가 폰 시장 진출을 알리는 첫 공식 발언이다.
삼성전자는 우선 저렴한 가격(100달러 내외)의 ‘바(bar)’ 형태 단말기를 조만간 ‘브릭스(BRICs·브라질 인도 러시아 중국)’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다.
LG전자는 현재 대만 업체들에 저가 단말기를 아웃소싱해 신흥 시장에 공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특히 LG전자 인도 법인은 본사와 별도로 대만이나 중국 업체들로부터 저가 단말기를 구입해 인도 시장 공략에 나설 방침이다.
이 같은 변화는 연간 9억 대가 넘는 세계 휴대전화 시장의 70%가 저가제품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브릭스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신흥 시장은 저가 폰 중심의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 인도 시장에서는 50∼100달러 제품을 앞세운 노키아가 79%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원가 경쟁력 확보가 관건
한국 업체들의 고가 ‘프리미엄’ 전략과 관련해서는 그 실효성을 두고 끝없이 논란이 제기돼 왔다.
LG경제연구원은 올해 7월 ‘저가 폰 시장,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보고서를 통해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시장 점유율 둔화는 고가 정책에만 매달려 성장성이 높은 신흥 시장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다소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저가 시장을 공략하려는 시도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국 업체들의 능력으로는 대량 생산에 따른 부품 단가 인하 등의 ‘규모의 경제’가 어렵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연간 5000만∼1억 대 수준인 한국 업체의 생산 규모로는 원가 절감에 한계가 있다는 것. 세계 1위인 노키아의 연간 생산 규모는 2억6500만 대에 이른다.
김민식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모든 공정을 스스로 하겠다는 한국 업체들의 ‘욕심’도 문제”라며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생산 공정의 25∼30%를 아웃소싱해 비용을 절감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영 기자 jaykim@donga.com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