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와의 준플레이오프 1차전을 앞두고 KIA 서정환 감독은 “이종범이 뛰어 줘야 한다. 그에게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때 ‘바람의 아들’이라 불리며 국내 프로야구를 호령하던 이종범(36)이지만 올해 정규시즌 중 2군 추락의 수모를 당했고 시즌을 타율 0.242, 도루 10개의 초라한 성적으로 마친 점을 감안할 때 서 감독의 이런 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팀 내 베테랑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내기는 한화 김인식 감독도 마찬가지. 김 감독은 9일 광주에서의 2차전을 앞두고 김민재(33) 조원우(34) 등 팀 내 ‘노장’들을 거론하며 “이들이 잘 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감독이 1차전에서 올 시즌 투수 3관왕의 위업을 이룬 데다 배짱도 갖춘 신인 류현진(19) 대신 문동환(34)을 선발로 내보낸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큰’ 경기에서 왜 감독들이 정규시즌의 성적보다 연륜과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이날 이종범이 똑똑히 보여 줬다.
이종범은 0-0으로 팽팽한 4회 선두타자로 안타를 치고 나가 연거푸 도루를 성공시켜 선취 득점을 올린 데 이어 1-1 동점인 6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왼쪽 안타를 치고 2루까지 내달리는 허슬플레이(몸을 사리지 않는 멋진 플레이)를 선보였다.
2루에서 아슬아슬하게 세이프됐기 때문에 “저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나” 하는 반응이 나왔지만 이종범이 2루까지 진출한 것이 류현진을 흔들며 결국 대량 득점의 발판을 마련했다. 역시 ‘노장 파워’는 무시할 수 없나 보다.
광주=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