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사회복지의 허점을 고발한 ‘나, 티에리 F는 프로 실업자’ 표지. 파리=금동근 특파원
“내 이름은 티에리. 발코니가 있는 큰 원룸에 산다. 발코니 아래로는 테니스 코트와 정원이 펼쳐져 있다. 알파로메오 승용차도 갖고 있다. 내 생활은 매우 안락하고 아무 불편이 없다. 내 직업이 뭐냐고? 글쎄 ‘프로 실업자’라고나 할까….”
프랑스 복지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24년 동안 ‘놀고먹은’ 한 실업자가 펴낸 책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책 제목은 ‘나, 티에리 F는 프로 실업자’.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성(姓)을 감춘 티에리(45) 씨는 24세 이후로는 일을 하지 않고 복지 수당으로 생활했다. 18세 때 처음 직업을 가진 뒤 띄엄띄엄 하게나마 제대로 일한 기간은 31개월. 나머지 24년가량 그의 직업은 ‘실직자’였다.
그는 “직업을 가져야 할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수당만으로도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대표적으로 꼽은 수당은 매주 99.75유로의 ‘특별연대 수당’. 크리스마스에는 152유로의 보너스도 나온다. 사는 집의 대출 이자는 매달 23.88유로만 내면 된다. 그는 “이런저런 수당을 모두 받으면 매달 레저비로 170유로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물가가 싼 중부 로안에 산다. 이 지역 실업률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17.7%. 그는 할인점에서 물건을 사고 가끔 친구들을 불러 저녁식사를 대접한다. 오전에는 집에서 빈둥거리다 오후에 외출해 사람들을 만난다. 여름에는 35일의 바캉스를 떠난다.
수당을 타려면 구직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이 역시 피해 가는 요령을 터득했다. 이력서 쓰는 법, 면접하는 요령 등 직업훈련을 받긴 하지만 배운 것과 정반대로 행동해 최대한 취직되지 않도록 했다.
220만 명이 실업자인 나라, 유럽에서 사회복지가 아주 후한 나라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의 사회복지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이 이 책에서 잘 드러난다. 언론들은 이 책을 놓고 복지제도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티에리 씨는 “나 스스로도 이렇게 오랫동안 수당으로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사실을 비판하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내가 일하기 싫어하는 것이 과연 내 잘못인가요?” 프로 실업자 티에리 씨가 되물었다.
파리=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