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의 일이다.
한국야구대표팀의 주전으로 미국 애너하임의 에인절스타디움을 밟은 이범호(25·한화)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비단처럼 깔린 잔디와 최고급 호텔 못지않은 라커룸 시설, 그리고 TV로만 접하던 유명 메이저리그 선수들까지….
한국은 WBC에서 일본 멕시코 미국을 연파하며 4강에까지 올랐다. 당시의 경험은 이범호처럼 젊은 선수들에겐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었다.
11일 대전 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KIA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
WBC라는 큰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덕분일까. 이범호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플레이오프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경기였고 만원 관중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 듯했다.
3회와 5회 연타석 홈런을 쳤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야수인 이범호는 수비에서도 여러 차례 깔끔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러나 반대편 KIA 벤치에는 아쉬운 선수가 한 명 있었다. 똑같이 WBC에 참가했던 왼손 투수 전병두(22)였다.
전병두는 KIA의 투수 엔트리 10명 중 유일한 왼손 투수다. 데이비스, 고동진, 한상훈 등 왼손 타자들이 포진한 한화 타선을 상대하기 위해선 그의 활약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그는 1차전과 2차전에 출장조차 하지 못했다. 컨트롤이 불안한 탓이었다. 3차전에서 마침내 기회가 왔다. 1-4로 뒤진 4회 2사 1, 3루에서 왼손 타자 고동진이 나오자 KIA 벤치는 전병두를 투입했다. 그러나 결과는 스트레이트 볼넷이었다. 그는 데이비스 타석 때 곧바로 윤석민으로 교체됐다.
이범호와 전병두. 두 선수의 명암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대전=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