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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제재 맞불’ 협박… 美 “군사적 선택 테이블위에 있다”

입력 | 2006-10-12 03:00:00

북한군, 유엔사에 돌발 접촉 제안11일 오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군사분계선 부근에서 북한군 장교들과 유엔사 관계자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11일 담화는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움직임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함께 미국이 금융제재를 철회하고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다고 할 경우 언제든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다는 이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이 태도를 바꾸지 않고 유엔 안보리를 통한 제재에 나설 경우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연이어 물리적인 대응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경고해 위기를 또 한 단계 높이려는 태도를 보였다. 성공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핵실험에 대해서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연이은 물리적인 대응조치란?=7월 미사일 7발 무더기 발사에 이은 9일 전격 핵실험 등 북한이 내뱉은 말들은 실천에 옮겼다는 점에서 “연이어 물리적인 대응조치를 취해 나가겠다”고 한 대목은 정부 당국을 긴장시키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자신들의 요구조건을 내건 뒤 그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위협을 담은 전형적인 논리구조를 보이고 있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단 상정해 볼 수 있는 물리적 조치로는 추가적인 핵실험 또는 7월에 실패로 끝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대포동 2호 미사일 2차 시험발사를 들 수 있다. 특히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에 성공할 경우 ‘성공적인’ 핵실험으로 확보한 핵탄두를 미사일에 탑재해 미국 본토까지 날릴 수 있다는 새로운 차원의 협박이 가능하다.

영변에 있는 5MW급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뒤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추가로 추출하는 것도 ‘핵무기고’를 늘린다는 차원에서 미국에 대한 연이은 물리적 조치로 작용할 수 있다.

물론 미국과 국제사회를 겨냥한 ‘공갈’이자 미국을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라는 평가도 있다. 주말경 채택될 예정인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안에 경제·금융제재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고 군사적인 제재까지 공공연히 언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핵실험과 9·19 공동성명이 모순되지 않는다?=북한은 이날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9일 핵시험은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 포기를 공약한 9·19 공동성명에 모순되지 않고 그 이행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 된다”는 궤변을 내놓았다.

북한의 주장은 9·19 공동성명을 만든 6자회담이 북한의 핵뿐 아니라 미국의 한국에 대한 핵우산까지 제거하는 것은 물론 궁극적으로 주한미군의 철수까지를 다루는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북한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개념 대신 남측의 영해와 영공에 미국의 전술핵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까지 제한하는 ‘비핵지대화’를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지난해 3월 31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려면 남조선에서 미국의 모든 핵무기를 철거시키고 남조선 자체가 핵무장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을 원천적으로 없애야 한다”며 “이 모든 것은 검증을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핵 문제를 대화와 협상으로 풀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는 “미국 때문에 핵실험을 했지만 대화와 협상을 통한 조선반도의 비핵화 실현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며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위대한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이며 우리의 최종 목표”라고 덧붙였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북한=3일 핵실험 강행 의지 천명 이후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북한의 속사포식 대응도 눈길을 끈다.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사일 발사 이후 작성된 대응 시나리오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통일연구원 전현준 선임연구위원은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 했을 때 국제사회가 강력한 제재의 움직임을 보일 것이라는 것을 예상한 북한은 위기를 신속히 고조시키는 가운데 미국과 극적인 타협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북한 외무성은 주요 사안에 대한 북한의 공식 방침을 대외적으로 밝힐 때 ‘성명’ ‘대변인 성명’ ‘대변인 담화’ ‘기자 질문에 대한 답변’ 등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 이날 대변인 담화는 ‘외무성 성명’이었던 3일 북한의 핵실험 선언보다는 격이 떨어지는 것이다.

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

■ 北 외무성 대변인 담화 요지

이미 천명한 바대로 자위적 전쟁억제력을 강화하는 새로운 조치로서 9일 우리 과학연구부문에서는 지하핵시험을 안전하게 성공적으로 진행하였다. 우리가 핵시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핵 위협과 제재 압력 책동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우리의 인내성 있는 성의와 아량에 제재와 봉쇄정책으로 대답해 나섰다. 우리는 미국에 의해 날로 증대되는 전쟁 위험을 막고 나라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부득불 핵무기 보유를 실물로 증명해 보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위대한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우리의 최종 목표이다. 우리의 핵시험은 핵무기와 현존 핵계획 포기를 공약한 9·19공동성명에 모순되지 않으며 그 이행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 된다.

핵무기전파방지조약(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이미 탈퇴하였고 아무런 국제법적 구속도 받지 않는 우리가 핵시험을 진행하였다는 것을 발표하자마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조종하여 압력적인 결의를 조작해냄으로써 우리에게 집단적 제재를 가하려는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을 보이고 있다. 만일 미국이 우리를 계속 못살게 굴면서 압력을 가중시킨다면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하고 연이어 물리적인 대응조치들을 취해 나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