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벽에서 반사되지 않는 ‘무향실’에서 첼로를 직접 연주하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김정진 교수.
더 좋은 소리를 ‘설계’하기 위해 바이올린 두께를 측정하는 수업시간. 바이올린 앞판에서 2cm마다 두께를 재는 방법을 찾아내라는 과제를 놓고 학생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실제 17세기에도 사용하던 기술이라고 하는데 아무리 해도 그 방법을 모르겠다.
답은 폭 2cm에 바이올린 길이만 한 종이 줄자를 옮겨가며 측정 위치를 찾아내는 것. 바이올린 앞판의 굴곡에도 불구하고 두께를 잴 수 있다는 사실에 학생들은 놀란다.
이렇게 두께를 파악한 뒤 조금이라도 두껍거나 어색한 경사를 대패로 살짝 밀어 주면 불안정하던 소리는 정확히 옥타브를 이루며 자리를 잡는다. 완벽한 소리를 내는 예술품으로 바뀌는 것이다.
칠을 새로 입힐 때마다 바이올린은 몰라보게 달라진다. 말리고 칠하고, 다시 표면을 갈아 매끈하게 만들고 또 칠하고…. 한 달이 넘도록 이런 단순 작업을 30번 이상 반복한다. 게다가 도료는 칠하는 도중 굳어 버리기 일쑤여서 매번 애를 태운다.
음악과 과학의 만남이 언뜻 불협화음처럼 비칠지 몰라도 실제로 둘은 같은 뿌리에서 뻗어 나왔다.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음정을 확립했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5mm 간격의 두 판자가 만들어 내는 소리는 17세기 이후 더는 기술적인 진화가 필요없을 만큼 완벽에 가깝다.
학기가 끝날 무렵 학생들은 제각기 만든 바이올린의 소리 스펙트럼과 파형을 지켜보며 감미로운 착각에 젖어든다.
“교수님. 한 100년 지나면 제 바이올린도 비싼 값에 팔 수 있지 않을까요?”
기쁨에 찬 표정을 짓는 학생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듣기 좋은 거짓말을 한다. “그야 모르지.”
학생들은 같은 재료로 만든 바이올린 가운데 최고가 되길 기대하며 이름과 제작지, 제작연도를 바이올린 안에 적어 넣는다. 그런데 작품명 가운데 이상한 이름이 눈에 띈다. ‘스트로베리?’ 누군가 바이올린의 명장 스트라디바리를 변형해 적어 넣은 익살스러운 이름이다.
김정진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gertrude59@ka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