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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물질 검출땐 ‘제조시점’까지 파악

입력 | 2006-10-13 03:00:00


범죄현장수사를 뜻하는 ‘CSI’라는 TV 드라마에서 현장 감식 수사요원들은 부패된 시체들 속에서 증거를 찾아내 과학수사기법(forensic science)으로 사건을 하나하나 풀어나간다.

핵폭탄을 이용한 ‘핵 테러’도 이런 과학적 범죄수사 대상의 예외가 아니다. 지문이나 유전자(DNA) 대신 핵무기가 폭발한 이후 방출되기 마련인 방사능 물질을 수집해 분석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른바 ‘핵 범죄 수사 기법(nuclear forensics)’이다.

핵 범죄 수사 기법의 유래는 194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은 중국 상공에서 채취한 미량의 분진을 분석해 소련이 중앙아시아 스텝지대에서 핵실험을 한 사실을 포착해냈다.

1990년대 초엔 소련 붕괴의 혼란 속에서 핵물질이 암거래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핵 수사 분야는 급성장했고 분광기술(spectroscopy)과 같은 화학적 분석기술을 사용하는 핵 범죄 수사 기법은 이제 어엿한 학문 분야로 자리 잡았다.

미 군축협회가 발행하는 ‘암스 컨트롤 투데이’ 10월호에 따르면 핵 범죄 수사는 3단계 과정을 거친다. 1단계는 지진파 측정과 인공위성 사진에 나타난 폭발 구덩이 규모를 파악하는 기초자료 수집 과정. 2단계에서 대기 중의 분진에 섞여 있는 방사능 물질을 분석하는 본격적인 증거 확보와 분석이 이뤄진다. 마지막으로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기존의 각종 핵 정보와 결합해 최종 확증을 얻는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핵 범죄 수사 기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핵 범죄 수사 기법을 이용하면 북한이 실험한 핵폭탄의 정체, 즉 고농축우라늄(HEU) 폭탄인지, 플루토늄 폭탄인지는 물론 그 ‘근원’까지 거슬러 파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법에 따라 HEU 폭탄으로 밝혀지면 HEU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온 북한은 당장 할 말이 없게 된다. HEU 폭탄일 경우 우라늄 농축 정도(우라늄235의 비율)를 알아낼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 플루토늄 폭탄으로 판명될 경우 그 플루토늄이 1993∼94년 제1차 핵 위기 직전에 추출한 것인지, 2002년 제2차 핵 위기 이후 추출한 것인지 밝힐 수 있다. 그동안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도 거부하며 공개를 막아 온 ‘과거 핵 이력’이 규명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까지 인공위성 사진을 통해 지형 변화를 포착해 내지 못하고 있는 데다 미국의 WC-135와 일본의 T-4 같은 첨단 대기관측 항공기가 동해 상공에서 방사능 물질을 검출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유출되는 방사능의 양과 바람의 방향에 따라 검출에 1, 2주 정도 걸릴 수 있어 시간이 필요하다. 방사능 물질이 극미량이거나 대기 흐름이 관측 장소와 반대 방향이라면 탐지 자체가 어려워 영구 미제(未濟) 사건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北핵실험 장소 김책 아닌 길주 가능성

북한이 9일 지하 핵실험을 한 정확한 위치가 정부가 최초에 발표한 함경북도 김책시 상평리(북위 40.81도, 동경 129.10도)가 아니라 길주군 지역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12일 알려졌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핵실험 이후 외국 기관의 자료 등을 추가로 입수해 분석한 결과 핵실험 추정 위치를 북위 41.267도, 동경 129.179도로 잠정적으로 수정했다는 것.

이곳은 길주군과 화성군이 인접한 경계지점으로 정부가 9일 발표했던 김책시 상평리에서 50km가량 북쪽에 있다.

또한 기상청이 한나라당 김희정 의원에게 제출한 ‘기상청 지진분석자료’의 추정 위치(북위 41.19도, 동경 129.15도)와 가깝고, 미국 지질조사국과 일본 기상청이 추정한 위치에도 근접한 곳이다.

정부 발표의 근거가 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핵실험 추정 위치와 기상청 추정 위치가 서로 다른 데 대해 기상청 관계자는 “두 기관의 관측 기기와 관측 위치가 다르기 때문”이라며 “자연지진은 기상청에서 맡아서 발표하지만 핵실험 같은 인공지진은 지질자원연구원이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질자원연구원 지헌철 박사는 “핵실험이 실시된 직후 정부가 내놓은 핵실험 위치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 주변 국가의 자료들을 추가로 입수해 계속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는 과정에 있다”며 “1주일 정도 후에 최종적으로 핵실험 위치를 발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이종훈 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