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타운’ 뉴욕을 연고로 하는 두 팀의 명암이 엇갈렸다.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한 뉴욕 메츠의 팬(왼쪽)과 탈락이 확정된 뒤 짐을 꾸려 아들과 함께 나가는 뉴욕 양키스 선수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뉴욕=AP 연합뉴스
《미국 뉴욕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그건 어떤 단어가 될까. 패션의 도시, 월스트리트, 브로드웨이…. ABC TV의 스포츠 프로듀서 로렌 에머리 씨는 뉴욕은 ‘베이스 볼 타운’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고 싶어 하는 도시 뉴욕이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는 야구에서 넘버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2006년 10월, 뉴욕의 가을은 새로운 ‘가을의 전설’에 대한 기대감으로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LA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그리고 ‘제국’으로 불리는 뉴욕 양키스.
세 팀은 메이저리그의 많은 명문 팀 가운데 역사와 전통에서 가장 자부심이 강한 팀으로 꼽힌다. 지금은 연고지가 다르지만 이들의 원래 뿌리는 같다. 처음엔 모두 뉴욕에 연고지를 두었다. 이들의 자긍심은 자신들이 베이스볼 타운인 뉴욕 태생이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세 팀은 그 어느 곳보다도 뜨거운 뉴욕의 야구 열기 속에서 명문으로 성장했다. 메이저리그의 역사는 뉴욕의 야구 역사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다저스와 자이언츠는 전설적인 홈런 타자 베이브 루스를 앞세운 뉴욕 양키스의 인기와 힘에 눌려 서부로 떠났다. 이제 그 자리는 뉴욕 메츠가 대신하고 있다.
양키스와 메츠. 쟁쟁한 두 야구팀을 가진 덕에 야구에 대한 뉴요커들의 관심은 뜨거울 수밖에 없다.
‘어메이징 메츠’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뉴욕 메츠는 길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극적인 연장 승부로 우승을 차지하면서 ‘기적의 팀’으로 불리게 됐다. 기존의 맹주인 양키스가 주로 백인 중상류층에게 인기가 높은 반면 메츠는 중남미계 팬이 많다.
두 팀은 양대 리그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팀으로도 유명하다. 뉴욕의 라이벌들은 올해 나란히 97승을 올리면서 사상 처음으로 동반 지구 우승을 차지했다. 그래서 뉴요커들은 서브웨이 시리즈, 즉 ‘지하철 시리즈’의 재연을 고대했다. 4번 지하철을 타면 양키스타디움으로, 7번 지하철을 타면 메츠의 홈구장 세이스타디움으로 갈 수 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서브웨이 시리즈가 벌어진 것은 모두 14번이었다. 6차례는 양키스와 뉴욕 자이언츠(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7차례는 양키스와 브루클린 다저스(현 LA 다저스)의 대결이었다.
6년 전에 열린 양키스와 메츠의 서브웨이 시리즈에서는 양키스가 4승 1패로 완승을 거뒀다. 이후 메츠는 올해까지 기나긴 침체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던가. 올해는 사정이 바뀌었다.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양키스가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년 꼴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며 일찌감치 탈락했다. 반면 메츠는 LA 다저스에 파죽의 3연승을 거둬 월드 시리즈를 향해 한걸음 다가섰다.
위기의 제국 양키스와 어메이징 메츠의 엇갈린 명암은 양팀 간판스타를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양키스 유격수 데릭 지터는 포스트 시즌에 강한 가을의 사나이다. 양키스에는 알렉스 로드리게스처럼 지터보다 연봉이나 평소 성적이 뛰어난 선수가 많지만 지터는 준수한 외모와 빼어난 리더십으로 ‘뉴욕의 연인’으로 불리며 팬들의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요즘에는 메츠의 신성 데이비드 라이트에게 밀리는 눈치다. 두 팀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미디어에는 촌철살인의 헤드라인이 자주 등장했다.
‘Mets sweep, Yankees weep(메츠는 휩쓸고, 양키스는 울었다)’, ‘Yankees fall, Mets fly(양키스는 떨어지고, 메츠는 난다)’….
서브웨이 시리즈를 기다렸던 뉴욕 야구팬들은 양키스의 탈락을 몹시 아쉬워하고 있다. 필자와 가까운 양키스의 한 팬은 “양키스의 탈락이 안타깝지만 야구의 결과는 실력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메츠 팬들은 이제 서브웨이 시리즈에 대한 기대를 접고 우승권과 거리가 멀었던 메츠의 정상 등극에 관심을 쏟고 있다. 메츠는 올해 내셔널리그의 같은 지구에서 10년 이상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를 마침내 넘어섰고, 현재 리그 최강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메츠 팬들은 지난주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승리한 뒤 한동안 스타디움을 뜨지 못한 채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양키스는 열정적인 팬들과 언론의 ‘물갈이’ 주장에 홍역을 앓고 있다. 반면 여기저기서 만나게 되는 메츠 팬들은 요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고 한다.
아직 가을은 끝나지 않았다. 비록 올해 조금 일찍 탈락하긴 했지만 양키스의 아성이 단기간에 흔들릴 일은 없을 것이다.
뉴요커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제국 양키스’와 ‘기적의 메츠’의 대결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두 팀이 올해처럼 선전을 펼친다면 베이스볼 타운 뉴욕의 전설은 실현될 것이다.
뉴욕=박새나 통신원(패션디자이너) sena.park@g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