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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나는 꿈속을 헤매는 ‘왕’이로소이다… ‘소년왕’

입력 | 2006-10-14 03:03:00

사진 제공 문학동네


◇ 소년왕/조은이 글·유준재 그림/196쪽·9000원·문학동네(초등 5년 이상)

몽유병에 걸린 소년 유경표의 얘기다. 몽유병이 아니더라도 경표같이 맘이 아픈 아이가 많다. 경표가 앓게 된 것은 사는 게 슬프고 힘들고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TV에 빠져 사는 엄마와 오디오만 끼고 사는 아빠는 각자의 취향 차이만큼이나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럴수록 엄마는 더욱 TV만 보고 아빠는 음악에 심취한다. 엄마도 아빠도 행복하지 않은 슬픈 사람들이다.

경표는 학교생활도 만족스럽지 않다. ‘정신봉’(막대기)을 휘두르거나 ‘정신봉’으로 아이들의 배를 꾹꾹 찌르는 담임선생님이 꼭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진실로 아이들에 대한 이해는 찾아 볼 수 없는 그런 사람이다. 선생님은 모범생인 척하는 미진이만 예뻐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진이는 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 집단따돌림 당하는 경서와 놀아 줄 정도로 이기적인 아이다. 이런 모든 사실을 아는 경표가 학교생활에 맘을 붙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어느 날 경표는 자기와 똑같은 모습의 ‘달온’이라는 아이를 만난다. 달온을 따라 간 곳은 거울왕이 지배하는 ‘달섬’이라는 공간이다. 그곳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달온이 다시 돌아왔다며 반긴다. 처음 왔는데도 어쩐지 이곳에 온 적이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 언덕바지에 있는 번쩍거리는 거울의 집….

환상계의 달섬은 원래 생명을 존중하는 섬이었고 달온과 해온은 섬 주민들에게 환대받는 아이들이었다. 달섬에 불행한 일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달온은 그 원인을 제공하는 아이라는 누명을 쓰고 쫓겨난다. 그 뒤 나타난 거울왕 덕분에 섬에서는 불행한 일이 더는 일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생명이 태어나지도 않는다.

경표는 몽유를 할 때마다 달섬에 간다. 그래서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이 교차해 전개된다. 몽유하던 경표는 거울왕을 만나 가면을 벗긴다. 가면 뒤에 나타난 얼굴은 바로 달온이었다.

쫓겨난 달온은 가면을 쓰고 돌아와 거울의 집을 세우고 달섬에 행복한 기억들을 가뒀던 것이다. 바다 밑에는 사람들의 불행한 기억을 가둬 섬에서 더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고. 그러나 그 불행은 경표가 외면한 현실이고 행복은 허구였다.

가면을 벗기고 기억들을 풀어준 뒤에도 현실은 변한 것이 없다. 아빠와 엄마는 이혼하려 하고 2학기가 되면 또다시 선생님과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 그러나 가면을 벗겼다는 것은 경표가 현실을 마주할 힘이 생겼다는 뜻이다. 즉, 이 책의 환상계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외면하다가 받아들이기까지에 이르는 성장과정의 심리극’(동화작가 김진경)인 것이다.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