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기업 부품공장에서 일할 수 있었던 기회가 제 삶을 바꿔놨어요. 이제 그 빚을 갚게 됐습니다.”
서울 일신여상 교사 민선희(57·여·사진) 씨가 8월 시가 6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병원은 민 씨가 기부 사실을 알리는 것을 마다해 기증식 행사도 열지 못했다.
민 씨는 15일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1970년대 돈벌이가 변변치 않았던 시절 강서구 염창동의 외국계 기업 부품 공장 일자리가 여동생과 나를 살렸다”며 “이제 그때의 나처럼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오는 가난한 외국인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민 씨가 기증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양지마을의 32평형 아파트는 시가 6억 원이 넘는다. 이는 지금까지 이 외국인 전용의원에 기부된 최고 액수였던 전국경제인연합회의 후원금 1억 원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
충남 예산의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민 씨는 1967년 서울에 올라와 구로동 섬유공장에서 스웨터 짜는 일을 시작했다. 0.7평 쪽방에서 여동생과 살며 온몸에 땀띠가 나도록 철야 작업에 시달렸지만 일당은 60원 정도였다.
그러던 참에 일하게 된 외국계 기업에서는 다른 공장에서와 달리 하루 8시간만 일하고도 꼬박꼬박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이때 모은 돈으로 야간 고등학교에 이어 야간 대학까지 마친 민 씨는 상업과 교사가 돼 올해로 28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전용의원은 2004년 7월 개원해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 동포 등에게 무료로 외래 진료는 물론 입원, 수술 등을 해준다. 그러나 경영이 어려워 지난해에만 약 3억 원의 적자가 났다.
민 씨는 “외국인 전용의원 소식을 접하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진 빚을 갚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