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꿍꿍이 뭘까?15일 판문점 인근의 경기 파주시 도라산전망대에서 한 미군 병사가 쌍안경으로 북한 측 동태를 살피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 발표 이후 북한군의 특이한 움직임은 아직 없다고 국방부는 밝혔다. 파주=AP 연합뉴스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북한은 조급한 반응과 일방통행적인 행동에만 나서고 있다는 게 북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1994년 1차 핵위기 때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사용하면서도 위기고조행위와 대화를 병행하며 제네바 합의에 이르렀던 때와는 다르다는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국제사회의 반응과 무관하게 핵실험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체제위기에 준하는 ‘특단의 사정’이 북한에 생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후계구도와의 연관성=전문가들은 핵문제와 관련한 북한의 ‘비합리적’ 행동을 북한의 후계구도 문제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체제의 생존을 도모한다는 국제정치적인 전략을 포기한 채 권력승계 작업을 진행시켜 내부를 다지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핵실험 강행의 절박한 내부적 요구에 대해 북한 내부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내부적으로 후계구도를 둘러싼 심각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는 체제유지를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분석은 북한이 극단적인 대외강경 노선을 걸으며 긴장을 고조시켰던 시점이 모두 권력승계와 관련해 중대한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이 뒷받침해 준다. 1968년의 푸에블로호 사건과 1·21 청와대습격사건은 김 위원장으로의 2세대 권력승계가 처음 준비되던 시기였고, 1993∼94년의 1차 북핵 위기 때는 그의 권력승계가 마무리되던 시점이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용호 교수는 “이번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은 훗날 권력승계가 마무리된 뒤 후계자의 치적으로 선전될 것”이라며 “아마도 ‘백척간두의 위기에서 미제와의 핵 대결을 승리로 이끌고 조선을 구하시어 위대한 영도력을 만천하에 떨쳤다’는 식으로 찬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3대 세습’ 지지하는 군부 vs 장성택 옹립하는 친중파?=북한 내부적으로는 핵실험을 주도한 군부강경파가 세습을 지지하는 양상을 띠고 있으며,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집단지도체제를 주장하고 있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차기 권력구조가 집단지도체제가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직간접적으로 전달해 온 중국은 친중파로 분류되는 장 부부장을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대로 군부는 선군정치를 계속 계승해 나갈 김 위원장의 세습체제를 지지한다.
한 대북 소식통은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2004년 업무정지 처벌을 받았던 장 부부장이 복권된 것은 중국의 집요한 요구에 따른 것”이라며 “김 위원장으로서는 대북 금융제재를 풀기 위해 중국의 협조가 절실했기 때문에 중국의 요구를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중국은 금융제재 문제를 풀지 못했고, 올해 초 김 위원장의 방중 이후에도 북한에 대해 뚜렷한 경제지원을 하지 않았다. 또한 지난해 2월 10일의 핵 보유 선언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자 군부가 강력히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불쾌한 감정이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월의 미사일 발사와 9일의 핵실험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지만 9월 말 ‘친중파’인 장 부부장이 탄 차량은 평양에서 대낮에 북한군부 차량에 받혀 폐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게 파손된 것과 관련해 군부가 장 부부장의 목숨을 노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고난의 행군’ 재개?=핵실험이 군부에 강성대국의 자존심을 선물했고 강경 방침을 취해 온 군부를 만족시켜 선군정치의 토대를 강화했을지는 모르지만 향후 북한사회의 내구력이 심각하게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 후계구도를 연구해 온 세종연구소 정성장 연구위원은 “김 위원장으로서는 핵실험을 통해 좀 더 안정된 체제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심각한 경제적 타격 속에 사회적인 붕괴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주민들에게 1990년대 중반의 ‘고난의 행군’을 재차 요구하는 것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 노동신문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문이 나온 15일 “혁명적 원칙에서 한 걸음 물러서면 두 걸음, 열 걸음 물러서게 된다. 이로 인해 종당(결국)에 잃게 되는 것은 민족적 존엄과 나라의 자주권이며, 차례질(돌아올) 것은 예속과 노예의 비참한 운명뿐”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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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원 기자 taewon_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