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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왜 당근만 고집하나” 타부처 부글부글

입력 | 2006-10-16 03:04:00

北 향한 패트리엇15일 경기 평택시 공군비행장에서 에어쇼 시범을 보이기 위해 FA-18 슈퍼호넷이 이륙하고 있다. 그 너머로 요격미사일인 패트리엇 발사대가 북쪽을 향해 배치돼 있다. 평택=홍진환 기자


북한 핵실험에 대한 대응 방안과 수위를 둘러싼 정부 내 이견이 수면 아래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아직 밖으로 불거지지는 않았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문을 이행하기 위해 구체적인 조치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사업 지속 여부와 대북제재 수위, 국제공조 파트너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폭발할 가능성도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13일 기자 간담회를 자청해 두 사업을 지속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그는 “나는 전에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사업을 계속 하겠다고 얘기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등 정부 내 다른 외교안보 부처 내에선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문이 최종 확정되기 전에 성급하게 정부 방침을 밝힌 것은 전략 전술상 실수”라는 지적이 많다. 미국 등 국제사회가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사업을 통해 북한에 들어가는 자금이 핵 등 WMD 개발 및 생산에 쓰일 가능성을 제기하는 시점에서 굳이 사업 지속 방침을 공개적으로 밝혀 국제사회를 자극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

또 15일(한국 시간) 안보리가 채택한 결의문에 두 사업에 대한 제재 의무를 부과하는 직접적인 내용은 없으나 북한이 두 사업을 통해 얻는 소득의 사용처와 핵 등 WMD와의 관련성에 대한 논란이 있기 때문에 사업 지속 방침 표명에 신중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많다.

특히 통일부가 북한 모래를 반입하고 지급하는 대금이 북한 군부로 흘러들어가 군용자금으로 전용될 우려가 있음을 알고도 묵인해 왔다는 의혹까지 제기돼 미국 등 국제사회의 사업 중단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내심 사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더라도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북한 편만 든다’는 반발을 사지 않기 위해선 모호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사업 지속 여부는 북한과 핵 관련 협상을 하거나 미국과 대북 제재 문제를 논의하면서 쓸 좋은 카드였는데 이제 쓸모가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제재 수위=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13일 “이미 북한에 대해 사실상의 제재인 쌀과 비료 등의 지원 중단을 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미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의 상당 부분을 썼기 때문에 제재 수위를 높일 수단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또 그는 “지금까지 (북한에) 쌀 한 톨을 주면서도 그냥 주지 않았다”며 대북 레버리지를 충분히 활용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선 지금까지 정부가 쓴 레버리지는 남북 교류 확대 등 ‘좋은 행위’를 끌어내는 데만 기여하고,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 등 북한의 ‘나쁜 행위’를 막는 데는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따라서 핵실험을 한 북한을 제재하기 위해선 지금까지에 비해 더 강한 제재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와 국방부 등 정부 부처에선 ‘출구를 열어 놓되 안보리 결의문의 제재 수위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해야지만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의견이 많이 나온다. 목표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지만 수단은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사업 중단이나 북한의 대남 수출 금지 등 수위가 높은 제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12일 국회 긴급현안 질의에서 “북한은 압박과 제재를 가한다고 (대화에) 나올 나라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다른 정부 부처의 한 관계자는 “핵실험은 ‘당근’ 위주로 실시된 대북 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며 “핵실험 후에도 제재의 실효성을 의심한다면 북한의 핵 보유 추진을 그대로 놔두겠다는 말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국제공조 파트너=1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대북 제재 수위에 보조를 맞추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단독 정상회담이 끝난 뒤 “중요한 합의를 달성했다”고 밝힌 것도 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중국과 보조를 맞춰 제재 수위를 조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외교부 등 다른 외교안보 부처에서는 북한이 핵문제를 놓고 대미 일변도 정책을 펴고 있는 만큼 미국과의 긴밀한 조율이 중국과 보조를 맞추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한 중견 외교관은 “중국을 통해 북한을 설득하고 북한과의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국과 보조를 맞추다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에 정면으로 맞서게 될 경우 잃는 게 더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외교부와 국방부에서는 북한의 핵실험 징후 등 안보와 관련된 핵심 정보를 미국에서 제때 넘겨주지 않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정보 공유의 폭과 깊이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상대국에 대한 신뢰”라며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이 북한과 관련된 핵심 정보를 한국에 넘겨주길 꺼리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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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