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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이기는 야구’ 위한 번트

입력 | 2006-10-17 03:05:00


번트.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지 않고 공이 내야에 천천히 구르도록 일부러 약하게 가격하는 것(야구규칙 2.13).

현대와 한화의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다. 두 팀의 야구 색깔은 바로 이 번트에서 확연히 갈린다.

현대는 정규 시즌 희생 번트 1위(153개) 팀이다. 역대 한 시즌 최다 기록이다. 반면 한화는 68개로 8개 구단 중 가장 적게 희생 번트를 댔다. 양 팀 사령탑의 번트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다르다.

먼저 김재박 현대 감독의 말을 들어 보자. 김 감독은 “야구는 득점을 해야 이기는 경기다. 번트만큼 득점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작전은 없다”고 말한다. “화끈한 경기를 바라는 팬들에게 번트는 야구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는 “그건 야구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기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김인식 한화 감독 역시 번트의 효용은 인정한다. “필요할 때는 나도 번트를 댄다”는 것.

그러나 그는 “번트는 1점을 내는 작전이다. 만약 번트를 대지 않으면 2∼3점, 아니면 더 큰 점수가 날 수 있다. 우리가 수비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량 득점이 가능한데도 상대가 번트로 1점을 얻으려 한다면 우리로선 ‘생큐’이다”고 말한다.

그래서 팬들은 김재박 감독의 야구를 ‘작전 야구’라고 하고, 김인식 감독의 야구를 ‘믿음의 야구’라고 부른다.

색깔은 달라도 목적은 똑같다. 바로 승리다. 번트 작전을 많이 사용하거나 최대한 자제하는 것도 더 많이 이기기 위한 것이다.

역대로 가장 강공을 선호했던 사령탑은 김성한 전 KIA 감독이다. 그러나 정규 시즌에서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던 그의 강공 작전이 포스트시즌에서는 번번이 막혔고, 결국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당시 KIA 팬들은 번트를 대지 않은 김 감독을 탓했다.

김성근 신임 SK 감독은 과거에 번트를 가장 좋아하는 감독 중 한 명이었지만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팬들은 그에게서 더 재미있는 야구를 원했다.

번트 때문에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는 게 야구다. 이기면 용서가 되지만 지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그 무엇보다 최고의 팬 서비스는 승리이기 때문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