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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신지호]남북정상회담은 또 다른 패착

입력 | 2006-10-17 03:05:00


2000년 6월 평양에서 있었던 사건을 한국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이라고 한다. 북한에서는 뭐라고 부를까? 북한식 어법을 따르면 북남 수뇌회담이 돼야 한다. 그런데 김정일 정권은 ‘역사적인 평양 상봉과 북남 최고위급회담’이라는 표현을 고집한다. 왜 그럴까. 나는 여기에 이제껏 한국사회가 놓쳐 온 반쪽 진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수수께끼의 해답은 당시 노동신문이 제공해 준다. DJ가 평양의 순안공항에서 김정일과 극적으로 만난 것은 ‘역사적인 평양 상봉’이다. ‘북남 최고위급회담’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평양 상봉’의 또 다른 표현, 동어 반복일까? 아니다. 노동신문은 DJ가 수행 참모를 데리고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의장 일행과 만난 일을 ‘북남 최고위급회담’이라고 설명한다. DJ는 ‘상봉’은 김정일과 하고 ‘회담’은 김영남과 한 것이다.

무슨 곡절일까? 이 점을 읽어내지 못하면 김정일 통치의 진수를 알 수가 없다. 2000년 6월 이후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당시 김정일 정권은 “남조선의 김대중이 백기 들고 찾아오기 때문에 장군님께서 광폭(廣幅)정치로 받아주시는 것이다”고 대내 선전을 해 댔다. DJ는 ‘장군님’과 같은 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적인 평양 상봉과 북남 최고위급회담’이라는 다소 긴 표현은 이런 북한 내부정치의 산물이다. 남북 정상이 6·15남북공동선언에 서명하자는 DJ의 제안에 대해 아랫사람에게 맡기자고 김정일이 마지막 순간까지 버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면 김정일의 답방을 기대한 것이 얼마나 헛된 꿈이었는가를 금방 알 수 있다. 아랫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맞는 것은 상대적으로 용이하지만 직접 찾아나서는 것은 여간해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경험한 동일한 사건을 놓고도 남북 간에는 커다란 해석의 차이가 존재한다. DJ는 북한의 두꺼운 외투를 벗기기 위해 햇볕을 내리쪼였지만, 김정일은 햇볕을 역이용해 체제 강화에 나섰다. 이른바 ‘햇볕정책 역이용 전략’은 단순한 가설이 아니라 대남공작 부서에 종사했던 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햇볕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80%에 가까운 국민이 노선 변경을 바라기 때문에 DJ와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몸부림을 친다고 한들 대세를 바꿀 수는 없다. 문제는 위기해법으로 제기된 남북 정상회담 추진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햇볕정책의 수정을 시사하면서도 “핵실험 이후 정상회담을 통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새롭게 검토해 보겠다”며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국무총리와 통일부 장관도 정상회담의 유용성을 설파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또 다른 실책의 시작일 뿐이다. 김정일이 평양에서 만나고 싶어 하는 상대는 노 대통령이 아니라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이기에 실현 가능성이 낮다. 아쉬운 소리를 해 성사시킨다 할지라도 노 대통령은 “남조선의 노무현이 장군님이 영도하신 선군정치의 위력에 굴복하여 두 손 들고 찾아온다”는 대내 선전을 피할 길이 없다. 또 “미국이 우리하고의 양자회담에 응한다면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복귀할 용의가 있다”는 김정일의 언술에 주도권을 허용해 정상회담은 핵 도발을 감행한 김정일의 선전장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예상되는 결과는 “무엇을 위한 정상회담이었느냐”는 국내외의 거센 비판이다.

김정일의 핵실험은 한미일 공조와 민족 공조 사이에서 애매한 스탠스를 취해 왔던 노무현 정부에 분명한 선택을 요구한다. 차기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로서 국제 공조에 앞장설 것인가, 아니면 계속해서 김정일의 변호인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정상회담 추진은 분명 후자에 해당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북정책의 변경을 언급한 노 대통령을 아직도 믿지 못한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