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부터 수입화장품을 써 왔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얼굴에 조그만 반점이 생기더군요. 가까운 화장품 대리점을 찾아 문의했더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하기에 화장품을 계속 썼어요. 그런데 최근 반점이 손가락 크기만큼 커져 피부과를 찾았는데 화장품 부작용일 가능성이 크다는 진단을 받았어요. 더 충격적인 것은 반점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달 초 사무실을 방문한 여대생 K(23) 씨가 분통을 터뜨리며 하소연했다.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K 씨는 사연을 털어놓은 뒤 화장품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손해배상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미국에서 화장품 부작용으로 얼굴에 영구적인 상처가 난 여성이 1986년 거액을 배상받은 사건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1986년 뉴욕 주 법원은 화장품 회사가 27세의 모델에게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준 점을 인정해 200만 달러(약 20억 원)를 물어 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K 씨는 자신도 1억 원은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필자의 대답은 ‘노(No)’였다. 한국은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도 2002년 7월 미국처럼 제조물책임(PL)법을 도입해 각종 제조물의 사용으로 생긴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즉 제조업자는 제조물의 설계, 제조, 표시 결함으로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 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문제는 미국 법원은 징벌적 배상으로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인정하지만 한국 법원은 피해자가 입은 손해만큼만 배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 법원은 생명에 치명적이지 않은 피해에 대해선 고액의 배상을 해주지 않는다. 따라서 K 씨가 받을 수 있는 배상액은 2000만 원을 넘기 어렵다.
상담을 하다 보면 K 씨처럼 의약품이나 식품, 화장품 등으로 피해를 볼 경우 거액의 배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의뢰인이 적지 않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대부분은 기대 이하의 금액 또는 기껏해야 실제 발생한 손해 정도만 배상이 이뤄진다. 소송이 능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의료전문 신헌준 변호사 j00n3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