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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공감]무대와 현실공간의 행복한 일치

입력 | 2006-10-23 03:03:00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이음아트서점에서 열린 연극 공연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서점과 연극이 만난 이색무대였다. 전영한 기자


무대를 비춘 조명은 종이로 몇 개 가려 놓은 천장의 형광등 정도. 문을 닫아도 바깥의 먹자골목의 소음은 계속 스며들었다. 이런 곳에서 연극 공연이 제대로 될까. 연극이 시작되면서 우려는 사라졌다.

20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이음아트서점에서는 서점과 연극이 만나는 이색 공연이 열렸다. 헌책방을 배경으로 한 연극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가 무료 시연회를 가진 것.

극단 ‘드림 플레이’가 24일 대학로 ‘혜화동 1번지’ 무대에 올리는 연극의 오프닝인 동시에 이음아트서점으로선 특별한 행사였다. 이 서점의 한상준 대표가 “‘문화의 거리’인 대학로에 서점 하나 없다는 건 수치”라며 ‘독립 운동’하듯 문을 연 지 꼭 1주년을 맞았다.

서점 안엔 100여 명이 빼곡히 들어앉았다. 간이의자와 책 판매대를 활용해 제법 계단식 객석의 공연장 같은 분위기를 냈다. 연극이 주말 저녁 헌책방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삼은 덕택에 ‘주말, 서점’이라는 현실의 시공간과도 어울렸다.

‘오늘의 책은 어디로 사라졌을까?’는 30대가 된 대학 91학번 세대가 20대의 추억과 현재를 돌아보는 작품이다. 서울 신촌 대학가에 실제로 있었던 서점을 배경으로 삼았다.

헌책은 곧 사람의 역사다. 등장인물이 기형도 시집에 서투른 고백을 써서 선물하며 풋풋한 사랑을 고백했던 일화가 등장할 때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웃었다. 20대 때 결연하게 밑줄을 그었던 문장들이 지금은 왜 중요하지 않게 됐을까 하고 물을 땐 정적마저 감돌았다.

무엇을 읽는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말해 준다. 서점에서 열린 이날 공연은 자신이 읽어 온 책들을 떠올리며 현재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무대 장치의 정교함을 버린 대신 현실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연출 김재엽 씨는 “일상적으로 드나드는 공간인 서점을 활용해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1시간 반 동안 그 경계는 사라진 듯했다. 대학생 양윤희(20) 씨는 “극장보다 리얼했다. 정말 그런 사연을 가진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는 것 같았다”고 했다.

서점도 때론, 판타지의 공간이 될 수 있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