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당일치기로 금강산을 다녀온 여당 초선의원이 관광안내원의 말을 퍼 나르며 “금강산은 평온했다”고 감탄했대서 잠시 화제였다. 금강산 안내원이 훈련받은 선전원이라는 사실은 ‘안 봐도 비디오’다.
이번에는 천정배 의원이 김근태 의장의 ‘개성 춤판’ 해설가로 나서 눈길을 끈다. 천 의원은 3선에 법무부 장관을 지낸 노무현 정권의 주주(株主)이고,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도 가끔 오르는지라 ‘탄핵역풍’을 타고 금배지를 단 초선들과는 무게가 다르다. 김 의장과 함께 개성에 갔던 그가 공개 e메일로 띄운 글이 걸작이라 몇 대목 인용하고, 댓글도 달아볼 마음이 생겼다.
“개성공단 일대에서 더 이상 긴장된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지극히 평온할 따름이었습니다.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햇볕정책의 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햇볕정책이 핵개발을 포기하도록 상대방을 변화시키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오히려 상대방의 핵개발을 직간접적으로 도와 우리를 그 인질로 변화시키고 있다. 북이 남침한 1950년 6월 25일 미명(未明)에도 평온했다.
“오전에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 창립 2주년) 기념식과 현장 방문을 마치고 점심을 나누는 자리에서 간단한 여흥이 곁들여졌습니다. … 식당 종사자들과 함께 짧은 춤을 추게 된 것입니다. … 북의 핵실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평범한 식당 종사자의 권유에 따른 것입니다. 누구도 비난할 수 없는 매우 자연스러운 인간애(人間愛)의 발로였을 뿐입니다.”
북 인권 외면도 人間愛의 발로?
마침 이날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는 로봇처럼 일사불란한 인민군 등 10만여 명이 핵실험 성공을 자축하는 군중대회로 세계의 이목을 모았다. 그들은 ‘위대한 김정일 동지를 수반으로 하는 혁명의 수뇌부를 목숨으로 사수하자!’고 외쳤다.
그런데 북에는 평범한 식당 종업원이 요인(要人)에게 춤을 추자며 서슴없이 팔을 잡아당기는 관습이라도 있는 건가.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의 임금은 월 57.5달러(약 5만5000원)이다. 산업자원부 남북경협 총괄지원팀이 작년 12월에 작성한 공문에 따르면 이 가운데 실제로 노동자 손에 들어가는 돈은 월 10달러(약 9570원)이다. 통일부는 총액의 70% 안팎이 근로자에게 지급된다고 설명해왔다. 김 의장, 이미경 의원 등과 춤을 춘 여성들의 몸가짐과 맵시를 사진 몇 컷으로만 봐도 평범한 식당 종업원이라고는 믿을 수 없다.
아무튼 김 의장 일행을 ‘섈 위 댄스’로 환대한 여성들과는 달리, 금강산 초병(哨兵)들은 지난달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을 2시간쯤 억류하며 “똑바로 서 있지 못하갔소?”라고 호통 쳤다. ‘민족끼리’의 편리한 이분법이다.
천 의원은 김 의장의 ‘인간애’를 강조했는데, 그렇다면 김 의장은 부자유(不自由)의 지옥에서 신음하는 대다수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정면대응해 본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이를(자연스러운 인간애의 발로를) 두고 한나라당이 공격의 포문을 열었습니다. … 그토록 말렸는데 기어코 가더니 사고 쳤다는 식의 비난도 있습니다. … 이것은 한반도의 미래를 반북(反北) 이데올로기의 틀에 가두어 놓고 안보 장사를 계속하려는 안보기득권 세력의 집단적인 반발에 불과합니다. … 그들에게 진정 묻고 싶습니다. 정말 한반도에서 전쟁을 원하는 것이냐고.”
천 의원에게 묻고 싶다. ‘북이 핵실험을 한 마당에 여당 의장이 방북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국제공조가 우선이다’고 말하면 북이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이란 뜻인가. 그렇다면 북이 핵무기를 실제로 배치하는 단계에 이르면 우리 국민은 아예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전쟁 공포에 빠져 숨도 못 쉬지 않겠는가.
김정일의 ‘전쟁장사’ 代行하나
상대가 도발하면 철저히 응징하겠다는 자세로 안보 대응을 확고히 해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동서고금의 경험이다. 우리에겐 북핵 제거보다 확실한 전쟁 억지책이 없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국제공조 동참을 ‘전쟁 불러들이기’로 몰아세우는 행태야말로 결과적으로 북의 핵개발을 돕는, 국민을 상대로 한 ‘전쟁장사’ 아닌가. 북이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하지 않고, 국제사회가 권하는 대로 리비아처럼 핵을 포기했다면 김 의장이 개성에 가서 춤을 췄다고 누가 나무라겠는가.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