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발생한 국민은행 강남역지점 프라이빗뱅킹(PB)센터 권총강도 피의자 정모(29) 씨가 범행 이틀 만에 경찰에 붙잡혔지만 범행을 사전에 계획했는지, 공범이 존재하는지 등은 아직까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PB센터장인 황모(48) 씨의 증언이나 주변 정황을 볼 때 정 씨가 치밀한 계획하에 범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은행 내부 또는 제3자로부터 도움을 받았을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러나 경찰은 정 씨의 진술을 토대로 우발적으로 이뤄진 정 씨의 단독 범행으로 잠정 결론지어 성급하게 수사를 종결하려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황 씨는 23일 본보 기자를 만나 “정 씨가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정 씨는 또 황 씨에게 “2주 동안 따라다니면서 당신이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옆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내 얼굴이) 기억나지 않느냐”고 말했다는 것.
정 씨는 17일 대포폰을 구입하고 18일 권총을 훔친 뒤 20일 은행을 털었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범행을 진행하면서 PB센터장이 살고 있는 아파트까지 알아내기란 쉽지 않다는 점에서 누군가로부터 이런 사실을 전해 들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경찰은 정 씨가 권총을 훔치기 전 실내사격연습장을 2, 3차례 현장 답사했다고 밝혔는데 권총을 훔칠 때는 치밀하게 계획했던 그가 PB센터에는 우연히 들어가 강도짓을 저질렀다는 것도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금융업계에선 PB센터의 통상적 운영 관행에 비춰볼 때 범행과정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정 씨는 황 씨를 시켜 여직원에게 고객상담실로 1억500만 원을 가져오도록 했다. PB센터 내 고객상담실에선 통상 돈이 오가지 않는 데다 정상적 통장 거래가 아닌데도 PB센터의 직원들이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는 것. PB센터에는 청원경찰이 있었고, 비상벨도 13개나 설치돼 있다.
이에 대해 센터장은 “가족이 공범에게 인질로 잡혀 있는 줄 알고 내가 정 씨가 나간 뒤에도 직원들에게 신고를 미루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 중인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돈을 나눠 갖지 않은 점으로 미뤄 공범이 없는 것으로 보이고 범행을 사전 준비한 흔적도 찾지 못했다”며 “지점장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의 이름을 들었다는 것은 당시 경황이 없어 잘못 들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은 23일 정 씨에 대해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