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떤 박물관도 한 번 이상은 가지 않을 정도로 박물관을 싫어하는 남자 서현(한양대 건축과 교수). 큐레이터로 미국에 머물 당시 4달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살 정도로 박물관을 좋아하는 여자 이보아(추계예술대학 문화산업대학원 아트비즈니스 교수). 햇살이 따뜻한 10월의 어느 날 오후 그들과 함께 28일로 개관 1주년을 맞는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을 산책했다.
#1. 국립박물관이여, 좀 더 개방적으로..
1층 역사관을 빠져나오자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관객을 압도한다. 원나라의 건축 양식을 도입했다는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그 어떤 유물보다도 관람객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이보아=유물 배치를 보면 박물관이 내세운 '세계화'에 많이 다가가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여요. 예를 들면 2층에는 중앙아시아관이 생겼고 특별전시전 8개 중 2개가 해외 유물 전시전이었거든요.
▽서현=그렇지만 저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보면 박물관이 내세우는 세계화나 미래지향적이라는 단어가 와 닿지 않는군요. 요즘 저 탑에 원나라의 기술이 많이 들어갔다는 결과가 나왔거든요. 결국 박물관의 1층 중앙을 장식하려고 복원된 경천사지 10층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의 맨 뒤 구석으로 물러나게 됐어요.
▽이=아쉬운 일이예요. 저 석탑을 복원하는데 10년이 걸렸어요. 복원 자체가 세계적인 문화재감이라고 극찬을 받는 유물인데.
▽서=그러니까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면 감추고 싶다는 그런 민족주의가 작용을 한 것이 아닐까요. (취재 후 박물관에 문의한 결과 석탑이 뒤로 밀려난 이유는 우리 유물을 대표하기 어렵다는 박물관측의 판단 때문이었다)
#2.중앙박물관의 과제는 한국적 특수성? 세계적 보편성?
매일 3000여명의 학생들이 박물관을 찾는다. 전시관 주위의 공간에서 웃고 떠들고 뛰어다니는 학생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이=지나치게 시끄러워요. 뛰어다니는 아이들도 있고. 왜 박물관에서 통제하지 않을까요. 소음은 유물에 치명적일수 있는데..
▽서=동의하기 어렵네요. 한국인의 민족성에는 장터 기질이라는 것이 있거든요. 앉아서 옆 사람과 잡담을 주고받고 즐기는 문화죠. 그런데 서구인들의 기질에 맞게 설계된 박물관 양식을 그대로 가져오니까 박물관과 관객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거죠.
▽이=관람 매너를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박물관은 보편적인 제3의 장소예요. 한국만의 특수성을 강조한다면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지 않을까요.
▽서=글쎄요. 한 국가를 대표하는 박물관이면 그 국가의 색깔이 확실히 나타나야 할 것 같은데요. 차라리 우리 식의 흥겹고 시끌벅적한 새로운 공간 연출을 고려했으면 어땠을지…. 풍물도 하고 춤도 추고 한국적 정서를 마음껏 즐기는 그런 공간을 만들자는 거죠.
#3.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박물관을 기다리며
▽서=내가 박물관을 처음부터 싫어한 건 아니예요. 그런데 박물관을 오면 생기가 없고 재미가 없어요. 애들한테 공짜표를 줘도 오지 않을 걸요? TV 드라마보다 재미가 없으니까.
▽이=박물관과 관객 사이의 상호작용이 많이 부족해요. 와서 보기만 하니까 아무래도 재미없죠. 그러면 흥미가 떨어지고….
▽서=그래도 난 간송미술관이나 리움 같은 곳은 괜찮거든요. 여기는 너무 주제 없이 그냥 모아놓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차라리 김홍도관을 만들어 김홍도의 그림을 전시한다든가 신윤복이나 장승업을 추가해 조선 3대 화가관을 만들면 관객들도 재미있고 쉽게 다가갈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일괄적인 배치는 조금 아쉽죠.
▽서=관람객의 참여를 어떻게 끌어내는가, 그게 미래 박물관의 과제가 되겠군요.
▽이=현대 모든 박물관의 새로운 과제죠. 20세기 박물관이 풍부한 컬렉션을 모으는데 집중했다면 21세기에는 관람객의 참여를 이끌 수 있는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죠. 유럽의 경우 진품을 똑같이 만들어 관람객이 만질 수 있게 한 '터치갤러리' 방식이 도입됐어요. 관람객이 구경꾼이 아니라 서비스를 누리는 존재로 인식되는 박물관이 되어야겠죠.
유성운기자 polari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