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사는 아이들은 자폐증에 걸리기 쉬울까?
조금은 뜬금없는 이 질문에 최근 미국 코넬대의 한 연구팀이 그렇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비가 오면 집 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TV 시청량이 늘어나는데 이런 환경의 아이들일수록 자폐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TV 시청이 직접 원인은 아니지만 관련은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케이블TV 가입 비율이 높은 지역일수록 자폐아 비율이 높았다는 실증 자료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이들이 TV를 의심하는 이유는 또 있다. 미국에서 자폐증으로 진단받은 아동의 비율이 1990년대 초 갑자기 증가했는데 이에 선행해 1980년대부터 미국 가정의 비디오리코더(VCR) 보급률과 케이블TV 가입률이 급격하게 증가했고 유아 전문 채널들도 본격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연구 결과가 공개되자 이를 가장 먼저 보도한 인터넷 잡지 ‘슬레이트’를 비롯해 관련 사이트들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지역 간 평균 TV 시청량을 비교하는 방식이 아닌 개인 TV 시청량을 직접 측정했어야 한다는 지적, 자폐 아동의 급격한 증가가 실제는 자폐증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짐에 따른 진단의 증가에 불과하므로 TV 시청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 정신지체는 줄어드는데 그것도 TV 시청과 관련이 있는 것이냐는 비판 등 여러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베스트셀러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의 저자로 유명한 스티븐 레빗 교수의 지적이다. “비가 많이 오면 부모의 TV 시청량이 늘고, 자폐증 관련 프로를 많이 보게 되고, 그래서 자신의 아이들이 자폐증이 아닌가 걱정하게 되어 자폐증 진단이 늘어난다. 과정이야 다르지만 어쨌든 TV가 자폐증을 만든다는 결론은 같다.” 즉 아는 것이 병이라는 얘기다.
TV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학문적으로 쉽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특히 구체적 인과관계는 그렇다. 하지만 영유아 시기의 TV 시청이 강렬한 시각적 자극으로 인해 뇌 발달을 저해할 수 있다는 지적은 이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번 연구는 학문적 엄밀성과는 별개로 부모들이 자녀의 TV 시청을 더욱 걱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다.
안민호 교수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