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르피아 경감 역으로 분장한 레나토 브루손.
바리톤계의 전설적인 거장 레나토 브루손(70) 씨. 그는 9월 말 일본에서 공연한 오페라 ‘리골레토’에서 타이틀 롤로 무대에 섰다. 과연 그 나이에 리골레토 역이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도 잠시, 오케스트라 연주를 뚫고 나오는 그의 엄청난 성량에 놀란 팬들은 기립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는 요즘도 1년에 7, 8편의 오페라에 출연하고 있으며, 오페라 DVD와 음반을 계속 출시하고 있다.
노래하지 않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무대를 장악할 정도로 ‘연기파 바리톤’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45년간 베르디의 오페라에서 아버지, 왕, 독재자 등의 역할을 도맡아 왔다. 특히 자식을 잃은 아버지, 권력을 상실하는 독재자 등의 역할에서 피 끓는 애통함을 표현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왔다.
그는 11월 9∼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갖는 첫 내한무대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토스카’에 출연한다. 천하의 악역인 스카르피아 경감 역. 겉으로는 화려하지 않지만 내면으로 침잠하는 깊은 음색으로 비장한 슬픔을 노래하던 그의 대변신은 이탈리아 현지에서도 관심거리다. e메일을 통해 그와 인터뷰했다.
“그동안 베르디 작품에서 80%는 아버지로 출연했다. 베르디 자신이 한 가정의 아버지로서 바리톤에 대해 각별히 생각하며 작품을 썼을 것이다. 하지만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는 다르다. 그는 시대를 떨게 했던 권력자로 사악하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더욱 냉소적이면서도 세련된 스카르피아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11월 14일 오후 7시 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리사이틀 공연도 가질 계획이다. 그는 함께 내한하는 소프라노 다니엘라 데시, 테너 파비오 아르밀리아토 씨에 대해 “한국에서의 ‘토스카’ 공연이 그들과 함께하는 마지막 무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래서 더욱 소중한 만남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요즘 오페라 무대에서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바리톤의 거장이 사라져가고 있다. 외모 위주의 상업성을 고려한 캐스팅도 성악가들의 수명을 점점 짧게 하는 요인이다.
브루손 씨는 “성악가의 커리어는 긴 세월을 요구한다. 무대가 곧 인생인 그들은 일평생 동안 스스로의 희생을 통해 발전해야 하며, 인내심을 사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