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맡기고 보자?’ 재정경제부가 정책개발을 위해 올해에만 외부 연구기관에 8억 원 상당의 연구용역을 줬지만 그 결과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진 것은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 연구용역은 외국의 보고서를 번역 분석하는 데 그쳐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 폐기했던 정책 올해 다시 의뢰하기도
재경부가 25일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재경부는 올해에만 20건, 7억9450만 원 상당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최소 500만 원에서 많게는 1억5000만 원짜리 중대형 프로젝트도 있다.
이 중 지금까지 정부의 경제정책에 반영되거나 참고된 것으로 파악되는 용역은 5건 안팎. 내년도 세제(稅制) 개편안과 관련해 한국조세연구원에 맡긴 ‘우리 현실에 맞는 근로장려세제(EITC) 모형과 구체적 실시방안’(1억 원)이 대표적이다.
‘한미 금융서비스 협상에 대비한 한미 금융환경 분석 및 주요 협상이슈별 대응전략 연구’(한국금융연구원·3000만 원) 등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앞두고 시의적절하게 발주된 용역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낮거나 주제가 공허한 용역이 더 많다.
정부는 이미 지난해 발표한 영세 자영업자 대책을 사실상 폐기처분했지만 올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영세 자영업자 지원대책 개선방안 연구’(6650만 원)를 다시 의뢰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맡긴 ‘한반도 경제발전 전략과 남북경협 추진계획’(5800만 원)도 연구 범위가 포괄적이어서 구체적 정책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이다.
○용역 발주는 특정 국책 연구기관에 집중돼
또 ‘의료산업화론의 이론적 배경 연구’(경희대 의료산업연구원·2000만 원)같이 학위 논문 제목처럼 보일 정도로 정책화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용역도 있다.
재경부는 이와 함께 KIEP에 ‘OECD 경제정책위원회 독일 보고서 검토 및 바람직한 정책 방향’(500만 원)이라는 용역을 맡기기도 했다. 이는 별도의 정책연구보다는 보고서 검토와 이에 따른 견해를 묻는 것으로 재경부 안팎에서는 재외공관에 파견된 재경관을 활용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한편 재경부의 외부용역이 특정 국책연구기관에만 집중되는 경향이 있어 용역을 통해 민간의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용역 중 60%인 12건이 KDI KIEP 조세연구원 금융연구원 등 4개 국책연구기관에 집중된 것.
익명을 요구한 재경부의 한 간부는 “정부가 힘 있게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목소리가 다를 수 있는 민간연구소보다는 아무래도 ‘입맛’에 맞는 국책연구기관을 선호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