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 세트 대신 사진을 부착한 합판을 배경으로 사용한 SBS ‘연개소문’.
대규모 전쟁 장면에 소수의 사람만 등장해 현실감이 떨어지는 MBC ‘주몽’.
‘이 드라마는 시트콤이 아닙니다. 사극입니다.’
이런 자막이 없다면 장르가 헷갈릴 지경이다. 21, 22일 방영한 SBS 사극 ‘연개소문’(토일 오후 8시 45분)에는 중국 궁궐의 사진을 부착한 조악한 합판이 배경으로 나와 시청자의 항의가 잇따랐다.
이 합판은 연개소문(이태곤)이 수나라 장안에서 일행과 사냥에 나서는 장면(21일), 양광(김갑수)이 첩 오강선(이재은)과 가마를 타고 지나가는 장면(22일) 등에 나왔다. 등장 인물과 가까운 뒤편에 세워진 데다 햇빛을 반사해 한눈에 합판임을 알 수 있었다.
‘연개소문’ 홈페이지에는 “요즘은 고화질(HD) 방송이어서 컴퓨터그래픽(CG)도 표시가 나는데 합판을 배경으로 쓰다니 한심하다”(주희경) “400억 원의 제작비를 어디에 쓴 거냐”(김은상) 등 비난 글이 올라왔다.
드라마 관계자는 “9월경 완공 예정이던 수나라와 당나라의 촬영 세트 건설이 지연되면서 그 현장이 화면에 잡히는 바람에 임시 방편으로 가린 것”이라며 “(그 화면을) 편집할 때 고민했으나 일정이 빠듯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MBC ‘주몽’(월화 오후 9시 55분)도 23, 24일 방영한 주몽(송일국)의 고조선 유민 탈출과 대소(김승수)와의 전투 장면이 허술하다는 시청자 지적을 받았다. 주몽이 이끄는 유민이 150여 명에 불과하고, 대소의 군사들이 허리 높이에도 못 미치는 풀숲에 숨은 주몽 일행을 찾는 대목이 그것이다.
‘주몽’ 홈페이지에는 “TV에 보이는 유민의 수가 너무 적어 경로 잔치 분위기였다”(윤우식) “군사들의 싸움이 동네 패싸움 수준이었다”(성두경) 등 비난이 이어졌다.
이 드라마의 9월 5일 방영분에서는 부여의 2만 군사가 한나라와 싸우기 위해 출병하는 장면을 50여 명으로 촬영했다가 “인터넷 게임 장면 같다”는 지적과 함께 이 화면을 패러디한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다. 고구려의 건국 과정보다 주인공들이 번갈아가며 납치, 감금, 구출을 되풀이하는 전개에도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KBS1 ‘대조영’(토일 오후 9시 30분)도 연기자의 실수를 걸러 내지 못한 허점을 보이기도 했다. 21일 방영분에서는 부기원(김하균)이 연개소문(김진태)에게 “개동이가 대조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이라고 말했는데 개동이(최수종)가 바로 대조영이다.
이에 대해 MBC 정운현 드라마국장은 “사극은 초반 시청률을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갈 수 있어 극 초반에 대부분의 예산을 투입한다”며 “이로 인해 예산의 적절한 분배가 이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사극들이 시청률의 과도한 경쟁에 내몰려 재미만 추구하면서 역사적 고증과 사실적 표현을 무시하는 바람에 사(史)는 없고 극(劇)만 남았다”며 “사극은 철저한 고증과 제작 과정을 거쳐야 시청자가 공감한다”고 말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