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공연]30평 거실의 열린 음악회

입력 | 2006-11-01 03:02:00

27일 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박창수 씨 집에서 열린 하우스 음악회. ‘한충완 밴드’가 들려 주는 재즈의 리듬을 관객들이 자유롭게 몸을 흔들며 즐기고 있다. 이훈구 기자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신의 한옥집을 개조한 ‘아트 포 라이프’에서 연주하고 있는 성필관(오보에), 용미중(플루트) 씨 부부. 성 씨는 “하우스 음악회를 통해 삶을 숙제가 아닌 축제로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고(故)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생전에 한남동 자택의 거실을 ‘문호홀’이라 이름짓고, 영재 연주가와 지인들을 초청해 하우스 콘서트를 열곤 했다. 작곡가 펜데레츠키 등 외국 연주가들부터 국내 기업인까지 50∼60명의 초대받은 사람들은 거실과 계단에 빼곡히 앉아 연주를 들었다.

그동안 ‘하우스 콘서트’는 일부 ‘초대받은 사람’들을 위한 전유물로 알려졌던 것이 사실. 그러나 요즘엔 인터넷으로 공연정보를 제공하고, 누구나 입장료만 내면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하우스 콘서트가 인기다.

● 귀가 아닌 온몸으로 느끼는 무대

“오늘은 재즈 연주라 당연히 많은 분이 오리라고 생각했는데 열여덟 분밖에 오시지 않았군요. 그럼 더 좋죠. 나중에 와인이 더 많이 돌아가니까요.”

27일(금요일) 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박창수(42) 씨 집. 철제 대문에 걸려 있는 ‘HOUSE CONCERT’라는 앙증맞은 팻말이 손님을 반긴다. 주인장 박 씨는 2002년 7월부터 자신의 집 2층을 개조해 하우스 음악회를 꾸준히 열어 왔다.

이날 133번째 콘서트는 ‘한충완 밴드’의 재즈공연. 학교종, 비행기, 마법의 성 등 귀에 익숙한 동요와 가요를 재즈로 연주해서인지 어린아이와 함께 온 가족도 눈에 띄었다. 관객들은 와인과 음료수를 마시며 벽에 기댄 편안한 자세로 음악을 즐겼다. 의자도 없이 마룻바닥에 앉아서 듣는 음악은 귀가 아닌 온몸의 진동으로 느끼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관객 중에는 최근 영국 리즈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니스트 김선욱 군도 보였다. 9월에 이곳에서 연주를 했던 김 군은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공연보다 이곳에서의 연주가 더 떨린다. 청중이 음표 하나까지 모두 알아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한 박 씨는 프리뮤직(즉흥음악)을 주로 해 온 예술가. 그의 콘서트에서는 가수 강산에 씨가 마이크 없이 노래를 하고, 이병우(기타), 강은일(해금), 김대환(드럼), 강태환(색소폰) 등 다양한 예술가들이 무대를 빛내 왔다. 벌써 내년 9월까지 공연 스케줄이 꽉 찬 상태. www.freepiano.net

하우스 콘서트의 또 다른 매력은 공연 후 갖는 와인 파티. 입장료(2만 원) 수입 중 절반은 출연자 개런티, 나머지는 와인과 치즈를 사는 비용에 쓰인다.

“뒤풀이를 하다가 선욱이가 즉흥연주를 했어요. 다음에 나보고 치라는 데 제가 어떻게 선욱이보다 잘 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피아노에 가볍게 뛰어올라 발로 연주를 했지요.” (박창수)

● 음악이란 우정을 나누는 것

보통 20∼30평 되는 공간에서 펼쳐지는 ‘하우스 콘서트’의 열기는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아트 포 라이프’, 강남구 대치동의 ‘마리아 칼라스 홀’ 등이 문을 열면서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다.

‘아트 포 라이프(Art for Life)’는 서울시향 오보에 수석이었던 성필관(52), 플루티스트 용미중(45) 씨 부부가 2004년부터 자신의 한옥집을 개조해 만든 하우스 콘서트장.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 작은 음악회를 열고, 연주 후에는 정원이 내다보이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밤늦도록 뒤풀이를 즐긴다. 공연 관람과 식사를 합쳐서 5만 원, 한 번 온 사람에게는 매주 문자 메시지로 공연 정보를 보내준다.

성 씨는 “예술이란 본래 살아 있는 사람과도, 죽은 사람과도 함께 나누는 우정”이라며 “하우스 음악회는 음악의 본래 정신을 되살리는 새로운 음악 유통경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www.artforlife.co.kr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