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시론/유호열]햇볕정책 실패 인정 빠를수록 좋다

입력 | 2006-11-01 03:02:00


북한 핵실험의 여진으로 한반도가 요동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대북제재위원회를 가동하여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수순을 밟고 있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은 북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북한에 대한 포위망을 좁혀 가고 있다. 반면 추가 핵실험 가능성이 상존하는 가운데 북한은 연일 핵실험 축하 군중집회를 개최하며 전쟁 불사의 결의를 불태우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핵실험 이후 북한은 고압적인 자세로 남한을 협박하고 있다. 한반도의 고조된 위기 상황으로 볼 때 북한 핵실험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는 미국 고위 관리의 예상이 현실화되는 것 같다.

북한 핵실험으로 야기된 위기 사태는 결국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지 않고는 해결될 수 없다. 한반도에서의 비핵화가 실현되지 않고는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며 남북한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도 실현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현 상황에서 대북포용정책은 실패하였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으며 햇볕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는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정책 현안이 되었다. 남은 임기 중 노무현 정부는 북한이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할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하여 한반도 비핵화를 복원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하는 데 속수무책이었으며 사상누각의 초라한 남북관계 실상만을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햇볕론자들은 북한을 따뜻이 품어 주면 북한이 개혁과 개방으로 전환하여 남북관계도 좋아지고 한반도의 전쟁 위협도 사라질 것이라고 믿었다.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증대되면 한반도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고 남북한이 자주적으로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햇볕정책 9년 만에 한반도는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의 전쟁 위협에 아무런 대비 없이 노출되고 남한 체제를 적화 전복하려는 세력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의도는 좋았을지 몰라도 현실은 햇볕정책에 더는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개인 영광과 정치적 입지 강화위해 교조적으로 추진했던 햇볕정책이 부메랑되어 한반도 위기 고조시켜”

햇볕정책이 북한 핵개발을 속수무책으로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핵개발에 도움을 주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전해진 4억5000만 달러의 현금은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북한 핵개발에 결정적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관광사업과 개성공단을 통해 북쪽으로 건네지는 현금 역시 북한의 핵개발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도리가 없다. 2000년 6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과의 단판 회담을 통해 한반도에 전쟁 위협이 사라졌다고 주장함으로써 북한이 안심하고 핵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청신호를 보낸 것은 아니었는지 냉정히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으로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이고 햇볕정책으로 인해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남한 사회가 동요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궤변이고 햇볕정책을 통해 국내 정치에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남한의 정치 지도자가 개인의 영광과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교조적으로 추진했던 햇볕정책이 부메랑이 되어 한반도의 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북한 김정일 정권이 핵무기를 폐기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뿐이다. 첫째는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함으로써 치러야 할 부담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고통이어야 한다. 유엔 안보리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대북제재결의안이 효과를 발휘하면 북한은 더는 제2, 제3의 고난의 행군을 강행할 수 없을 것이다. 대북제재안의 효과는 중국과 한국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수이고, 중국의 대북제재는 한국의 대북제재 노력의 진정성 여부에 좌우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PSI 역시 북한을 효율적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참여가 관건이다. 우리 정부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우려하듯이 PSI의 참여 확대가 곧바로 한반도의 무력충돌을 야기하거나 전쟁으로 비화될 것이라는 주장은 북한 핵실험 이후 전개된 국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단견에 지나지 않는다.

둘째,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력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경우 김정일 정권 자체를 교체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김정일 정권은 핵무기를 보유하는 한 어떠한 외부의 침략도 막아낼 수 있다고 믿고 있으나 그럴수록 북한 내부로부터의 붕괴 가능성은 증대될 것이다. 북한 내부의 급격한 붕괴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수반하며 한반도에 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으므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피할 수 없을 경우 이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에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작전계획을 수립하고 북한 정권의 소멸과 통일에 대한 구체적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비롯한 남북관계 전반을 낙관적으로 다루었던 대북포용정책은 북한의 오판과 우리의 자만심으로 결국 폐기할 시점에 왔다. 우리 정부나 햇볕론자들은 그들이 추진했던 햇볕정책이 실패한 것을 인정하는 데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햇볕정책을 개인이나 정권의 정체성과 직결시키는 교조주의적 고집을 과감히 떨쳐버려야 한다. 사면초가에 놓인 북한 정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서 더는 정책 전환을 미루어서는 안 될 만큼 한반도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유호열 고려대 행정대학원장·북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