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들이 결말을 결정할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의 연극 ‘쉬어 매드니스’. 미국에서 27년이라는 최장기 공연기록을 세운 코믹 추리극으로 배우들이 관객의 선택에 맞춰 결말을 만들어 주는 형식이다 사진 제공 뮤지컬 해븐
《관객들이 공연에 참여해 직접 결말을 결정하는 독특한 연극이 무대에 오른다. 미국에서 최장기 공연기록(27년)을 갖고 있는 코믹 추리극 ‘쉬어 매드니스(Shear Madness)’. 관객들이 살인사건 용의자 4명 중 다수결(거수)로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인물을 지목하면 배우들이 관객의 선택에 맞춰 결말을 만들어 주는 형식이다. 관객의 역할이 절대적인 만큼 이례적으로 리허설에도 소수의 연극 팬을 ‘연습용 관객’으로 초청했다. 관객과 함께한 첫 리허설 현장을 찾았다.》
○ 예상 밖 질문엔 즉흥연기… 3가지 결말 가능
30일 오후 서울 대학로 예술마당 지하 연습실. 1시간 동안 사건이 진행된 뒤 극 중 성북경찰서 강력반 소속 마형사가 등장해 관객들에게 ‘사건의 재구성’을 요구했다.
관객들은 기억을 더듬어 앞서 본 사건의 수상한 부분을 ‘증언’했다.
사건의 배경은 성북구의 한 미용실. 미용실 위층에 사는 유명 피아니스트가 미용실 가위에 찔려 살해된다. 용의자는 평소 피아니스트와 사이가 나빴던 미용실 주인 토니 리, 평소 절친했던 피아니스트로부터 유산을 물려받게 돼 있던 미용사 미스 심, 피아니스트에게 협박편지를 보냈던 태진아, 그리고 마당발 장여사다.
30분간 증언에 이어진 중간 휴식(인터미션). 배우들이 모두 퇴장하는 일반 연극과 달리 이 작품은 ‘용의자’인 배우들은 “사건 현장을 떠나면 안 된다”는 마형사의 지시에 따라 그대로 무대에 남는다.
오직 마형사만 인터미션에 관객에게 다가와 “누가 수상하냐” “왜 수상하냐” 등 ‘탐문수사’를 벌였다.
2막이 오르면 관객들이 직접 나서 용의자를 상대로 심문해야 한다. 하지만 이날 연습에서 관객들은 엉뚱하게도 용의자 대신 경찰인 마형사를 추궁했다. “정말 경찰 맞는지 수상하다” “왜 신분증을 제대로 보여주지 않느냐”….
마형사 용의자들이 뭐 특별한 행동을 한 건 없나요?
관객 미스 심이 쓰레기를 버리러 간다면서 슬쩍 가위를 거기에 버렸어요.
미스 심 그건 끝이 부러져 못 쓰게 돼 버린 거라고요.
마형사 기억나는 다른 의심스러운 행동은 없나요?
관객 태진아가 잠깐 나갔다 왔어요.
태진아 화장실에 갔다 온 겁니다.
관객 가방을 갖고 나갔잖아요!
태진아 화장실에 가방 갖고 가는 게 죄라도 되나요?
마형사 오늘 관객들 정말 기억력이 뛰어나십니다.
○ 3일부터 대학로 예술마당서 무기한 공연
지켜보던 민복기 연출이 끼어들었다. 민 연출은 “관객이 헷갈리지 않도록 형사는 공연 초반부터 확실하게 진짜 경찰이라는 느낌을 심어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배우들은 관객의 ‘예상 질문’을 미리 뽑아 상황별로 미리 연습하지만, 예상치 못한 질문은 모두 애드리브(즉흥연기)로 넘겨야 한다. 심문 도중 알리바이가 증명되는 한 사람을 빼고 관객은 세 사람 중 한 명을 범인으로 선택해야 한다. 세 가지 결말이 가능한 작품인 만큼 배우들은 세 가지 결말을 모두 연습해 둔다.
이날 리허설에서는 태진아가 범인으로 ‘뽑혔다’.
관객 이지선(39·서울 강서구 가양동) 씨는 “관객이 작품에 직접 참여하고 호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객인 이영미(24·영등포구 신길동) 씨는 “극이 진행하기에 따라 자칫 산만해질 수도 있고 무척 재미있을 수도 있는 작품 같다”고 평했다. 3일부터 무기한 공연. 대학로 예술마당2관. 02-744-4337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