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명신 전 주월한국군 사령관은 월맹이 세계 최강 미군을 상대로 게릴라전을 벌여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로 월맹 지도자 호찌민를 꼽았다. 호찌민은 대(對)프랑스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민족의 영웅이었다. 그렇지만 생전에 자신의 동상 하나 세우지 못하게 했고, 검소한 생활 태도가 몸에 배어 있었다. 채 장군은 “호찌민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순안공항에서 헐렁한 검정 옷에 폐(廢)타이어로 만든 샌들을 신고 꽃다발을 받는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월남군부는 부패했고, 잦은 쿠데타로 유능한 장성이 요직을 맡기 어려웠다. 무능하고 부패했더라도 ‘내 편 심고 보자’는 인사가 판을 쳐 월남 패망을 앞당겼다고 채 장군은 지적했다.
9억 달러 들인 ‘주체의 神殿’
필자는 몇 해 전 기독교 목사들과 함께 평양에서 금수산 기념궁전을 들여다본 일이 있다. 북한 당국은 목사들이 “기독교인은 죽은 부모의 시신에도 절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김일성 미라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 않는 참관을 허용했다.
금수산 기념궁전은 주석궁을 개조한 건물이다. 기념궁전에 들어서면 전면에 방북 인사들이 김 주석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던 백두산 정밀화(精密畵)가 걸려 있다. 거기서부터 장엄한 순례가 시작된다. 긴 회랑에는 순안공항에서도 볼 수 없는 이동식 보도가 설치돼 있었다. 검은 한복을 입은 ‘현대판 신녀(神女)’들이 도열한 곳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소독 증기가 안개처럼 뿜어져 바깥세상의 오염을 제거했다. 걷고 타고 오르고 내리다 지칠 무렵 미라가 누워 있는 방에 도착했다. 그 방에는 세계 인류가 김일성에게 경배하는 모습을 담은 조각이 있었는데 우리 일행만 고개를 들고 있었다.
필자는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기념관에 안치된 마오쩌둥 미라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레닌 미라를 구경한 적이 있다. 그들의 미라도 거대한 신전에 안치되지는 않았다. 금수산 기념궁전은 필자가 둘러본 세계 어떤 종교 시설보다도 웅대했다.
북한은 1995∼97년 ‘고난의 행군’ 기간에 9억 달러를 쏟아 부어 금수산 기념궁전을 성역화했다. 북한 인구가 3년간 먹을 수 있는 강냉이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고난의 행군’ 기간에 인민들은 풀뿌리를 캐 먹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으며 죽어 가고 있었다. 평양에서 만난 한 주민은 필자에게 “고난의 행군 때 평양시민도 초근목피(草根木皮)를 했다”고 귓속말을 했다.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 등 노벨 평화상 수상자 3명은 지난달 30일 뉴욕타임스 공동 기고문에서 ‘1990년대 북한에서 1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식량 구매에 쓸 돈을 군사적 목적과 핵 개발로 돌린 것이 일부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들은 북한 수용소에 정치범 20만 명이 갇혀 있으며 지난 30년 동안 40만 명이 죽어 나갔다고 고발했다. 국제적으로 공소시효가 없는 반인륜(反人倫) 국가범죄에 해당한다.
‘反인륜 범죄 정권’ 두둔하기
북에는 ‘호찌민 샌들’이 없다. 당과 군 간부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하사한 메르세데스벤츠를 타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좋아하는 포도주는 1980년 프랑스 보르도산 ‘샤토 라투르’. 한 병에 500만 원이 넘는다. 와인 저장고에는 특급 와인 1만 병이 보관돼 있다고 일본인 요리사가 폭로한 바 있다. 백성이 굶주려도 지도자는 태연하게 일본인 요리사가 만들어 주는 생선 초밥과 캐비아(철갑상어 알)에 ‘샤토 라투르’를 곁들인다.
국가정보원이 ‘한마음으로 김 위원장을 받들어 모시겠다’는 조직을 적발했다. 그들은 2600만 북한 주민의 인권 대신에 김정일 정권을 선택했다. 어디 그들뿐인가. 북이 미사일을 쏘고, 핵실험을 해도 쌍지팡이 짚고 나서서 역성을 드는 남쪽의 친북 인사와 시민단체들도 부지기수(不知其數)다. 이들은 반인륜 국가범죄를 자행하는 정권을 두둔하고 있다. 길을 한참 잘못 들었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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