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기근 때 북한은 제 백성 100만 명 이상이 굶어 죽도록 했다. 식량 살 돈을 군(軍)과 핵개발에 쓰느라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작가 엘리 위젤 씨가 최근 공개한 북한 인권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같은 상을 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근 “남북관계를 개선해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 해도) 안심하고 사는 세상 만들었다”고 딴소리를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김 전 대통령의 대선공약에 따라 2001년 출범한 기구다. ‘직원 채용 때 학력은 물론이고 마약중독 여부도 따지지 말라’는 권고법안을 낼 만큼 세세한 인권에까지 신경 쓴다. 그러면서도 북한 인권에 대해선 백서는커녕 권고안 한번 낸 적 없다. 올해 초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공무원·교사의 정치참여 확대를 골자로 한 이른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내놨다. 정치에 정신 팔린 공무원과 교사 때문에 국민의 인권이나 학생의 수업권이 침해되는 데는 관심도 없다.
▷위젤 씨와 함께 보고서 작성에 참가한 셸 망네 보네비크 전 노르웨이 총리는 “인간의 존엄성은 국경이나 사회공헌도와 관계없다”며 북한 인권문제에 유엔이 나설 것을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과 인권위는 자신들의 이념과 정치적 이득에 공헌하는 이들의 인권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한줌도 안 될 김정일 정권 사람들이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면서도 2300만 북한 주민의 인권은 외면하니 말이다.
▷도롱뇽의 생존권까지 ‘폭력적으로’ 옹호했던 그 많은 환경단체가 북한 주민의 굶주림과 고통엔 침묵하는 것도 가치가 뒤집혔다. 노무현 정권 역시 김정일 정권을 구하기 위해 2300만의 인권을 저버리지 않는가. 안경환 신임 인권위원장은 “북한 인권문제의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폭력적 시위대의 인권 못지않게 전·의경의 인권, 나아가 다수 국민의 ‘평화로운 생활권’ 보장에도 신경 써 줬으면 한다. 목청 높은 소수의 인권 때문에 다수의 인권이 유린당하는 남북의 ‘인권 양극화’ 현실에 눈뜨시길.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